욕하는 세종… 뿌리 깊은 나무 인기를 견인하는 4가지 비결

입력 2011-11-10 17:36


지금 독자들이 읽고 있을 이 글자, 한글은 왜 만들어졌을까.

이런 물음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답변할 수 있는 쉬운 질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종대왕의 깊은 뜻까지 헤아려 한글의 난산(難産) 과정을 꼼꼼히 설명해보라 한다면 사정이 달라진다. 누구나 알지만 동시에 잘은 모르는 것이 한글 창제 과정이기 때문이다.

SBS 수목극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의 시작을 다룬 작품이다. 지난 9월 서울 논현동 한 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영현 작가는 이 같이 말했다. “주제는 ‘왜 글자인가’다. ‘이도(세종)는 왜 글자를 만들어야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허구와 사실이 뒤섞인 ‘팩션(Faction)’ 사극이다. 하지만 거짓이 섞였다 해도 시청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한글을 통해 낮은 곳 백성까지 보듬으려는 세종의 마음을.

이 밖에도 이 드라마엔 흥미진진한 이야기, 배우들의 호연, 세련된 연출이 있다. 드라마가 갖춰야 할 모든 것을 탑재한 명품 사극인 셈이다. 24부작으로 기획돼 10일 방송된 12회를 기점으로 절반을 넘긴 ‘뿌리 깊은 나무’. 시청률 20%를 돌파한 이 작품의 인기 비결을 들여다봤다.

① 이야기의 힘

이정명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뿌리 깊은 나무’는 제작 단계부터 스타 작가 콤비가 집필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김영현 작가는 ‘대장금’ ‘서동요’ ‘선덕여왕’으로, 박상연 작가는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화려한 휴가’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두 사람은 집현전 연쇄 살인 사건을 시작으로 한글 반포까지의 과정을 미스터리 스릴러 형식에 담아낸다. 시청을 하다가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흐름을 놓치기 십상. 그만큼 스토리는 촘촘하게 직조돼 있다. 특히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남긴 음성 조직 ‘밀본(密本)’이 수면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과정, 밀본의 수장인 정기준의 정체가 드러나는 장면은 보는 이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씨는 이 작품의 가장 큰 인기 요인으로 대본을 꼽았다. “김영현 작가는 작품의 전체 흐름을 잘 만들어가는 걸로 유명하다. 박상연 작가는 추리물 집필에 탁월하다. ‘뿌리 깊은 나무’엔 이런 두 분의 장점이 하나로 결합돼 있다.”

② 한석규의 힘

지난 7월 만난 배우 차승원. 지난 10년 동안 30편 넘는 영화·드라마에 출연한 그는 함께 작업한 동료 배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로 한석규를 꼽았다.

“평범한 캐릭터도 한석규 선배가 연기하면 비범해진다. 선배는 센 권법(연기)을 쓰는 게 아니다. 눈에 확 들어오진 않지만 부드러운, 그러면서 결국엔 상대를 굴복하게 만드는 태극권 같은 연기다. 함께 일하면 ‘아, 저렇게도 연기할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된다.”

차승원의 말처럼 한석규는 차원이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예컨대 그는 버럭 화를 내면서도 표정 속에 자조 섞인 웃음기를 섞어서 표현할 줄 안다. 성우 출신인 만큼 그 어떤 배우보다 호소력 있는 발성을 한다는 것도 그만이 갖는 장점이다.

‘뿌리 깊은 나무’는 한석규가 1995년 ‘호텔’ 이후 16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한 작품이다. 제작발표회에서 그는 “시청자들이 ‘이분(세종)도 사람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연기하겠다”고 했다. 당시 포부처럼 그는 사극 역사상 가장 독창적인 임금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있다. 화가 나면 욕을 하고 집기를 던지는, 하지만 한없이 마음이 여린 대왕 세종을.

③ 연출의 힘

전작 ‘바람의 화원’에서 영상미로 호평 받은 장태유 PD의 강점은 이번 작품에서도 마찬가지. 드라마의 전체적 색감은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하다. 배우들이 펼치는 액션신은 잘 만들어진 무협영화 장면처럼 아름답게 느껴진다.

복잡한 스토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화면에 담아내는 능력도 높게 평가된다. 드라마평론가 김교석씨는 “굉장히 디테일한 부분까지 살려내고 있다”고 말했다.

“병졸들의 움직임, 단역들의 말투 하나하나까지도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느껴져요. 사극의 전통적인 연출 방식하고 다른 것도 많죠. 예컨대 지금 방송되는 ‘광개토대왕’(KBS)만 보더라도 중요 장면에서는 (사극 연출의 관습대로) 인물 클로즈업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뿌리 깊은 나무’는 그런 방식을 잘 안 쓰는 편이죠.”

④ 메시지의 힘

작품에 나오는 표현을 빌리자면, 이 작품이 갖는 메시지의 힘은 드라마 인기의 ‘숨은 뿌리(밀본)’라 할 수 있다. “지랄” “우라질” 같은 욕설을 서슴지 않는 극중 임금의 모습은 익히 알려진 성군(聖君) 세종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하지만 권위를 벗고 백성과 나란히 서겠다는 세종의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우리 시대엔 결핍된 리더십의 한 전형을 발견하게 된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학과 교수는 “개인의 야망이 아닌 백성을 위하는 마음에서 모든 정책을 펼치는 것이 극중 세종이 보여주는 리더십”이라며 “퓨전 사극이면서도 정통사극이 중시하던 교훈적 측면을 ‘뿌리 깊은 나무’는 잃지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