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청문회도 과외시대… 청문회에서 살아 남는 법
입력 2011-11-10 19:27
지난 8월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첫 번째 질의에 나선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마이크를 잡자마자 한 후보자가 ‘청문회 리허설’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몰아붙였다.
“후보자는 ‘예라고’라고 하는 커뮤니케이션 회사를 알고 있습니까?”
“못 들어 봤습니다.”
“못 들어 봤어요? 후보자는 보다 효과적인 청문회를 준비하기 위해 컨설팅회사를 통해서 연습을 했는데 그런 사실은 인정하십니까?”
“리허설을 한 적이 있습니다. 컨설팅회사 직원이 아마 리허설에 참석한 것으로….”
“장관급 후보자가 청문회를 위해서 컨설팅회사와 연습을 한 것은 한상대 후보자가 최초입니다. 비용은 어떻게 했습니까?”
“제 사비로 내기로 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가게무샤’(‘대역’을 뜻하는 일본말)를 두고 준비를 했는데 그것도 인정하십니까?”
“스태프들이 (청문위원 역할을 맡아) 저한테 질문하는 형식으로 리허설을 했습니다.”
“(자료를 들어 보이며) 특히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대역으로 예라고 대표인 이 여성분이 하셨는데 기억하시겠어요?”
“….”
한상대 검찰총장이 처음이라고?
박 의원 얘기대로 한 후보자는 ‘예라고(Yerago)’라는 이미지 컨설팅 회사의 도움을 받아 모의 청문회를 갖고 ‘실전’ 대비 연습을 치밀하게 했다. 이 회사 직원들과 검찰 간부들이 청문위원 대역을 맡아 한 후보자와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특히 박영선 의원 역할을 맡은 인물이 허은아 예라고 대표다. 한 후보자가 이 회사 이름을 몰랐다고 한 게 거짓말은 아니었다. 허 대표는 한 후보자를 처음 만났을 때 또 다른 직함인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 소장’ 명함을 줬으니까(허 대표는 당시 사무실 TV로 청문회를 지켜보다 박 의원이 느닷없이 ‘예라고’ 얘기를 꺼내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러나 박 의원이 몰랐던 게 있다. 청문회를 위해 컨설팅 회사와 연습을 한 게 한 후보자가 최초가 아니었다. 업계에 따르면 이미 2009년부터 20명 안팎의 장관급 후보자들이 컨설팅 회사에 의뢰해 청문회 준비를 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청문회 검증 과정에서 국무총리, 감사원장, 검찰총장, 각종 장관 후보자들이 줄줄이 낙마하면서 요즘은 전문 컨설팅 업체를 통한 청문회 ‘족집게 과외’가 거의 필수 과정이 됐다.
이번 주에는 김용덕 대법관 후보자(7일), 박보영 대법관 후보자(8일) 청문회가 개최됐고, 다음 주에는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15일) 청문회가 열릴 예정이다. 인사청문회는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다. 장관급 후보자들은 어떤 식으로 청문회 준비를 할까. 미디어 트레이닝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 2009년부터 7명의 청문회 준비를 컨설팅해준 태윤정 메타윈(Metawin) 대표와, 8명의 청문회 준비를 도와준 허은아 대표를 각각 인터뷰해 그 과정을 알아봤다(두 대표는 청문회 컨설팅 얘기를 기자에게 꺼내는 데 매우 조심스러워했다. 의뢰인들과 ‘누설 금지’ 계약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인명은 밝히지 않았다).
물 마시지 마라
청문회 컨설팅을 받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후보자는 관련 업체에 청문회 3∼4주 전쯤 연락을 해온다. 이건 시일을 넉넉하게 두고 준비하는 후보자들 얘기다. 개중에는 3∼4일 전에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자체적으로 청문회 연습을 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니까 급히 전문가를 수배해 부리나케 전화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는 청문회 하루 전날 SOS를 치는 경우도 있다.
연락을 받은 전문가는 후보자 측과 적게는 1회, 많게는 4회 정도 만나 청문회 준비에 들어간다. 후보자 본인을 만나기 전에 프로필, 언론 기사, 영상자료 등을 찾아 사전조사를 한다. 후보자가 직전까지 몸담았던 조직의 부하직원들과, 앞으로 맡게 될 부처의 스태프들을 만나 브레인스토밍을 할 때도 있다. 그러고 나서 후보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장단점과 스타일을 탐색하고 청문회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어떤 것인지 묻는다. 그리고 후보자가 고쳐야 할 부분들을 체크한다. 50∼60대 인사들이 평생 몸에 밴 습관을 고치기는 힘들다. 그러나 고칠 건 고쳐야 한다.
우선 시선. 질문을 받거나 답변을 할 때 반드시 상대방을 쳐다봐야 한다. 시선을 회피하거나 자료에 시선을 파묻게 되면 자신감과 성의가 없어 보인다. 자신을 주목하는 청문위원이 여럿이면 시선을 골고루 나눠줘야 한다. 이때 꼭 유의해야 할 점이 있다. 눈만으로 시선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몸도 함께 따라줘야 한다. 특히 질문자가 바로 앞에 있지 않고 측면에 있을 경우 어깨와 몸의 방향을 함께 돌리지 않고 시선만 돌리면 째려보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상대방이 얘기를 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고 메모를 하기도 하면서 청문위원 및 시청자들에게 경청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청문회가 진행되는 동안 절대 물을 마시지 마라. 가급적 땀도 닦지 마라. 사람이 초조해보이고 거짓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사진기자들은 후보자의 그런 모습을 즐겨 찍고 신문에도 그런 사진이 잘 나간다. ‘목 타는 장관 후보자’ ‘땀 흘리는 후보자’ 이런 제목과 함께. 참았다가 쉬는 시간에 하라. 어떤 후보자는 자꾸 혀로 입술을 핥거나 손수건으로 입술을 닦아내는 버릇이 있다. 이 역시 사전에 립글로스를 바르든가 해서 방지해야 한다.
손이나 팔을 책상 밑 다리 사이로 축 늘어뜨리는 후보자가 있다. 그러면 허리도 구부정해진다.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컨설턴트가 “여기를 펴세요” 하고 등허리와 견갑골을 탁! 쳐주기도 한다. 손을 책상 위로 가지런히 올리고 자세는 곧아야 한다. 그래야 겸손하면서도 당당하게 보인다. 다리를 꼬면 안 된다. 자기 어깨 너비만큼 벌리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허리도 바로 세울 수 있다. 모 후보자의 경우 앉아서 다리를 덜덜 떠는 버릇이 있었다. 바지주머니에 자꾸 손을 넣는 후보자도 있었다. 이 역시 지적받았다.
의상도 전략이다. 신뢰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무늬가 없는 단색 솔리드 계통의 옷을 입는다. 흰색 와이셔츠에 짙은 감색 양복이 무난하다. 넥타이는 굵은 사선형 무늬가 좋다. 가늘고 촘촘한 스트라이프 무늬의 넥타이는 번져 보여서 상대방 시선을 어지럽힌다. 머리숱이 적은 후보자의 경우 장시간 조명에 노출되면 머리 안쪽이 훤하고 땀으로 반짝반짝해 보이기 때문에 흑채를 살짝 뿌려두는 게 좋다. 여성 후보자의 경우 귀고리와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화려하게 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후보자 흥분시키는 리허설
리허설 때는 업체 대표와 직원, 후보자의 의상과 헤어스타일을 봐줄 코디네이터, 그리고 카메라를 든 촬영팀을 대동한다. 한상대 후보자처럼 청문위원 대역을 쓰는 롤 플레이(role play)는 통상적으로 하는 방법이다. 중견급 방송사 취재기자를 별도로 섭외해 대역을 맡기기도 한다. 저격수로 나선 대역은 미리 준비한 예상 질문을 공세적으로 던진다. 그 전에 자신만만해 하거나 쉽게 생각했던 후보자도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리허설에 들어가면 당황하거나 흥분하는 경우가 많다. “이거 너무 심한 거 아냐?” “그런 질문까지 나오겠어?” 하며 막 성질을 내는 후보자도 있다. 그 자리까지 올라왔으니 최근 10년간 부하 직원들한테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자기 하나를 두고 여럿이 공격하는 경험을 겪어본 적이 없다. 곤혹스럽다. 그래서 정작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3분의 1도 못 한다.
답변은 두괄식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 결론부터 말한 뒤 부연설명이 따라줘야 한다. 부연설명은 간결하고 명료하게 다섯 문장 정도로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귀에 쏙 들어오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 청문위원들은 후보자가 충분히 대답하도록 기다려주지 않는다. 말을 중간에 자르고 제2, 제3의 공격을 속사포처럼 이어간다. 설명부터 하는 미괄식 답변으로 가면 중간에 초점이 흐려지고 샛길로 빠지는 경우가 흔히 있다. 모 후보자의 경우 미사여구가 습관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형용사, 부사 다 빼고 명사, 동사로 얘기하라는 컨설팅을 받았다.
억울하고 열 받는다고 청문위원들하고 싸우려고 하면 안 된다. 시청자들이 좋게 안 본다. 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을 상대로 답변하는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감정관리를 해야 한다. 설명하고 해명하되 항의하고 역정 내듯이 하면 안 된다. 지난해 8월 청문회 때 야당 청문위원에게 “집사람이 밤새도록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이용섭 의원은 제 부인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했던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경우가 나쁜 사례로 꼽힌다.
아울러 일반 국민들 정서를 철저하게 고려해야 한다. “여가를 즐기기 위해 지방에 땅을 샀는데, 6000만원밖에 안 된다” 이런 식으로 답변하면 곤란하다. 본인이 부유층이더라도, 아니 그래서 더욱 서민 입장을 감안해야 한다. 지난 7일 김용덕 대법관 후보자 청문회 때 36억원 재산가인 김 후보자가 4500만원에 취득한 자신의 부인 골프회원권에 대해 “가격도 별로 높지 않고…”라고 말했다. 청문회 준비를 안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답변이다. 그가 “4500만원은커녕 연봉 1000만∼2000만원도 못 받는 비정규직이 600만명”이라는 청문위원들의 호통을 들은 건 당연했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다.”(박은경 환경부장관 후보자) “일산 오피스텔은 친구에게 놀러 갔다가 사라고 해서 샀다.”(이춘호 여성부장관 후보자) “부부가 교수를 25년 동안 했는데 재산 30억원은 다른 사람에 비해 양반인 셈.”(남주홍 통일부장관 후보자) 자신의 눈높이를 기준으로 답변했다 여론을 크게 악화시킨 사례들이다.
명백한 부정까지 포장할 수는 없다
리허설 모습을 카메라로 촬영한 뒤 다시 보여주며 하나하나 지적하면 후보자들은 “어이쿠! 내가 저랬다는 말이야?” 하고 놀라고 쑥스러워한다. 청문회에 바로 나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 비용은 컨설팅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00만원 안팎이다.
그런데 후보자들 중에는 부동산투기나 탈세, 위장전입 등 자신의 불법·비위 문제를 캐묻는 질문을 어떻게 피해갈 수 있는지 요령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부분은 컨설팅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부정까지 포장할 수는 없다. 태 대표와 허 대표는 기자에게 “잘못한 것은 잘못 했다고 분명하게 인정하고 핑계대지 말아야 한다”고 똑같이 말했다.
사과도 기술이다. 사과할 부분은 확실하고 쿨하게 사과해야 한다. 자신의 과오에 대해 구질구질한 변명을 늘어놓는 순간 변명의 횟수와 반비례로 자신의 가치와 신뢰도는 떨어진다. “잘못했다. 그런데 사실 아내가 가정경제를 다 책임지고 있어서 아내가 알아서 했다.” 이런 식으로 토를 달면 안 된다. 해명이 아니라 비겁해 보인다. 취임 이후에도 무슨 일 터지면 아랫사람 잘못이라고 뒤집어씌울 인물이라는 인식을 준다. “제 불찰이다” “제 부덕의 소치다”라고 사과하고 딱 끝내야 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빠져나와야 한다.
태 대표는 “미디어 트레이닝은 그 사람의 메시지나 진정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방법이지 거짓말을 코치하는 게 아니다”라며 “후보자에게 ‘거짓말하면 큰일 난다. 한 방에 훅 간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허 대표 역시 “없는 사실을 포장하거나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기술을 나는 모른다.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는 사람의 장점을 좀 더 잘 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일 뿐”이라며 “이미지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니 역대 정권에서 인사청문회 관문을 못 넘고 낙마한 후보자들을 보며 미래의 후보자들도 명심해야 한다. 불필요한 말실수나 태도의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는 일은 컨설팅을 통해 피할 수도 있지만, 드러난 불법이나 비리 사실을 감추는 기술은 없다. 본인이 분명하게 사과하든 자리에서 물러나는 수밖에 없다. 섣불리 거짓말과 책임회피로 넘어가려다 태 대표 표현처럼 ‘한 방에 훅 간’ 후보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애초에 청와대가 그런 문제 인사들을 후보자로 지명한 것 자체가 낙마 사태의 1차 원인이겠지만.
김호경 기자 hk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