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전기 쓴 월터 아이작슨 “잡스, 삼성 높이 평가하면서도 증오”
입력 2011-11-09 21:20
‘파트너로서 존경, 경쟁자로서 증오.’
스티브 잡스는 생전에 삼성에 대해 이 같은 애증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모순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은 삼성에도 똑같이 적용됐다. 잡스의 공식 전기를 쓴 월터 아이작슨(59)은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자신의 사무실에서 국민일보를 비롯한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설명했다.
잡스는 그에게 전기 집필을 부탁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각도 담아 객관적으로 써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아이작슨은 천재 잡스가 있기까지는 “절대적으로 아내의 힘이 컸다”고 평가했다.
아이작슨은 1984년 시사주간지 타임의 기자 시절부터 잡스와 인연을 맺었다. 2009년 전기 집필을 시작한 이래 50차례 가까이 잡스를 인터뷰했고, 100여명의 주변 인사를 만났다. 그는 타임 편집장과 CNN 최고경영자를 거쳐 현재 아스펜 연구소 회장 겸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다.
-사망한 잡스가 사람들로부터 왜 이렇게 많이 인기를 끈다고 생각하나.
“그는 아주 감성적이며, 세상 사람들과 감성적 연결고리를 갖고 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가 만든 아이폰, 아이팟을 즐기면서 그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비틀스 멤버였던 존 레넌이 세상을 떠났을 때와 마찬가지다. 내가 레넌이 숨졌을 때 정서적인 유대감을 느꼈던 것과 비슷하다.”
-그가 자신의 전기에 요구한 것은 있는가.
“단 하나, 지금의 책표지 외에는 없다. 단순한 디자인은 그가 직접 제시한 것이다. 원고도 보지 않았다. 다만 집필이 끝날 무렵 내용을 말해줬더니 편안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잡스 없이 애플이 잘 해나갈 수 있나.
“잡스 체제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애플을 경영하면 5∼10년 동안은 잡스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팀 쿡이나 조니 아이브 등 자신이 사망한 이후 후계팀을 생각해놓은 것 같다.”
-그의 성격으로 묘사되는 반문화적(counter-culture) 성향은 애플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잡스는 히피였다. 그는 60년의 반체제 운동, 히피 운동과 실리콘밸리의 공학을 하나로 합치려 했다. 그것은 애플 조직의 정수(essence)라 할 수 있다.”
-잡스가 한국의 삼성과 삼성 기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나.
“삼성을 높이 평가했고, 동반자로 생각했다. 구글의 안드로이드폰은 애플의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척 싫어했다. 그래서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삼성 등 휴대전화 회사들도 한편으로는 싫어했다. 파트너로서 삼성에 무한한 존경심을 가졌지만,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삼성 휴대전화가 나왔을 때 아주 싫은 라이벌로 간주한 것이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계속 (삼성 등) 경쟁자들과 싸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 세 차례 반복했다는 ‘오, 와우(Oh, Wow)’는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누구도 알 수 없다. 잡스는 종종 ‘삶은 거대한 미스터리’라고 말했다. 그의 삶 일부도 거대한 미스터리다.”
-잡스가 왜 빌 게이츠를 평가절하했다고 생각하나.
“70년 중반에 만난 두 사람은 강한 친분관계를 계속 유지해 왔다. 서로 경쟁하며 존경하는 사이였다. 잡스가 예술적이고 열정적이며 미학적 취미를 가졌다면, 게이츠는 비즈니스 지향적 인물이었다.”
-누가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쳤는가.
“절대적으로 아내 로런 파월이다. 그의 낭만적이고 반사회적이며 감각적이고 과학적인,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모든 성향을 하나로 묶어내는 역할을 했다. 그게 없었더라면 오늘의 잡스가 있을 수 없었다.”
-부(富)에 대한 철학이 있나.
“잡스는 돈에 관해서는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그가 대학에 실패하고 인도를 여행했던 젊은 시절, 몹시 가난했다. 거부가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늘 돈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돈을 많이 벌더라도 대궐 같은 큰 집을 갖거나 집 주변에 담장을 쌓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실제 그의 집은 동네 평범한 모퉁이 집에 불과했다. 잡스는 늘 돈과 물질에 집착하면 인생이 망가진다고 말했다.”
-잡스가 인생에서 가장 후회한 대목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젊은 시절 여자친구(크리스앤 브레넌)의 임신과 그녀에게 태어난 딸(리사) 문제에 대처했던 방식은 정말 후회한다고 말했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