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루스코니 이후 이탈리아 앞날은… 伊 최대 ‘골칫거리’는 이제부터 경제
입력 2011-11-09 21:15
끊임없는 성추문과 부패 의혹 속에서도 “나 말고는 이탈리아를 이끌 사람이 없다”며 자리를 지키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결국 경제위기의 압박에 무릎을 꿇었다. 골칫거리 총리는 퇴임했지만 이탈리아 부채위기 해결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정권 유지 불가능=베를루스코니 총리는 8일(현지시간) 하원에서 치러진 2010년 예산 지출 승인안 표결에서 채 과반도 확보하지 못하자 사임을 결정했다. 더 이상의 정권 유지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였다.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결단을 가장 거세게 채근한 곳은 금융시장이다. 총리의 사임 발표 전 이탈리아 국채 10년물의 수익률은 사흘 연속 기록을 갈아 치우며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1조9000억 유로의 국가 부채를 줄이는 데 필요한 경제개혁을 실행할 능력이 없다는 시장의 판단이었다.
정치적 갈등도 문제였다. 지난 7월 지안프랑코 피니 하원의장은 40명에 달하는 의원들과 함께 현 중도우파 연정을 이탈했다. 연정 핵심 파트너인 북부연맹과의 균열도 심해졌다. 그간 침묵을 지켜오던 베네딕토 16세 교황까지 공개적으로 총리의 도덕성 부재를 질타하기 시작했다. 정치·경제·종교 등 모든 측면에서 공격을 받으며 결국 사임 카드를 꺼낸 것이다.
총리는 다음 주 유럽연합(EU)에 약속한 경제개혁 조치가 의회에서 통과되면 사퇴할 예정이다.
◇어두운 이탈리아 앞날=총리는 사임했지만 당장의 리더십 공백 우려로 9일 국채 수익률은 전날보다도 상승했다. 이날 이탈리아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국가 부도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 7% 선을 넘겼다. 국채 금리가 7%를 넘어서면 이자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구제금융이 불가피하다는 게 금융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소시에테 제네랄 은행의 채권투자전문가 시어런 오헤이건은 “새 정부 구성과 재정위기 확산 방지를 위해 EU가 요구한 재정 감축 조치를 실행할 수 있을지를 놓고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국 시나리오=총리 사임 후 정국에 대해서는 정파 간 협의 결과에 따라 세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첫째는 중도우파 연정을 확대하는 경우다. 이 경우 집권 자유국민당의 안젤리노 알파노 사무총장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야권과 거국내각을 구성할 경우에는 경제전문 관료 출신으로 여야의 고른 신임을 받는 마리오 몬티 밀라노 보코니 대학 총장이 새 총리 1순위로 꼽힌다. 몬티 총장은 EU 반독점집행위원을 지냈다.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대통령이 의회를 해산하고 이르면 내년 1, 2월 조기총선을 치를 수도 있다.
양지선 기자 dyb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