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또 ‘월권’… 이번엔 거래소에 증권사 예탁금 자료 제출 요구

입력 2011-11-09 21:34


금융감독원 감사 중 민간 증권회사 직원들의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해 사생활 침해 논란을 일으켰던 감사원이 한국거래소 감사 과정에서는 권한 밖인 증권회사의 영업 기밀 정보까지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이 피감기관 소관이 아닌 민간기업 정보 수집에 나선 것으로 드러나자 권한남용이라는 비난과 함께 ‘사찰’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9일 감사원과 증권업계 등에 따르면 감사원은 지난달 말 거래소를 감사하면서 증권사들의 투자자예탁금 이용 현황 파악을 요구했다. 투자자예탁금은 주식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일시적으로 맡겨 둔 예수금으로, 증권사는 투자자들에게 이용료를 지급하고 이를 재투자한다.

거래소는 감사원 요구에 따라 전체 60여개 증권사에 공문을 보내 지난해 기준 투자자예탁금의 예탁 형태, 이용료율, 일평균 잔액 등을 조사했다. 거래소가 공문을 보낸 시기는 감사원 감사를 받던 금감원이 증권사 임직원들의 ‘금융거래정보제공 동의서’ 요청 공문을 보낸 시기와 비슷하다.

문제는 투자자예탁금 관련 업무가 거래소의 소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투자자예탁금 이용료 업무는 각 회사의 영업 기밀에 해당하는 것으로, 민간금융회사들의 자체 협의체인 금융투자협회 자율규제본부가 자체 감독을 담당하고 있다. 거래소 관계자는 “투자자예탁금 이용료는 평소 거래소가 파악을 하지 않는 권한 밖 일이라서 의무적으로 제출하라고 할 수 없는 사항이었다”고 말했다. 공문을 받은 증권사 가운데 5곳을 뺀 전부가 거래소에 회신했다. 거래소는 이들 회사로부터 받은 자료를 감사원에 보냈다.

증권업계에서는 감사원이 잇따라 민간 정보를 요구하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저축은행 부실 등으로 최근 정부에 대한 국민의 비판 여론이 커지자 감사원이 청와대에 대한 과잉충성으로 권력을 남용하면서까지 증권사 옥죄기에 나서려고 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제기했다. 일각에서는 감사원 출신 인사들이 금융관련 공기업과 민간 금융회사 감사로 진출할 수 있는 ‘영향력 키우기’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감사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현재까지 고위감사공무원 이상 퇴직자 42명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14명이 금융관련 공기업과 민간 금융회사에 각각 7명씩 재취업했다. 감사원은 “증권시장 운영 및 감독실태를 폭넓게 감사하면서 증권사들이 투자자예탁금 수익을 제대로 투자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지 살피려던 것이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경원 김남중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