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아의 행복스케치] 온유한 크리스천

입력 2011-11-09 18:21


얼마 전, 지인 목사님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에 책 한 권을 소개받았다. ‘데이비드 E 테일러’ 목사님이 쓴 ‘예수님의 얼굴’이라는 책이다. 나는 요즘 이 책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서 단 몇 줄이라도 읽어야 잠을 잘 정도로 듬뿍 빠져 있다. 책의 내용이 알찬 것은 물론 무엇보다 나도 테일러 목사님처럼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고 싶어서다. 그러다보니 말씀을 더욱 깊이 정독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다. 나는 이 책을 읽을 때마다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 테일러 목사님에게 하셨던 것처럼 저에게도 예수님의 얼굴을 보여주세요’라고. 간접적으로나마 주님을 대면한 경험 말씀들을 읽노라면 은혜가 차고 넘쳤다.

예수님은 완벽하신 ‘신사’

나는 평소에도 주님의 음성 듣기와 주님의 얼굴과 대면하는 경험을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아직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에서는 내 인성에 크게 변화를 줄 만한 말씀들이 가득했다. 예수님은 특히 그분의 온유한 마음을 내게도 바라신다는 느낌을 받고 크게 감동받았다. 나는 여태껏 온유함의 뜻을 문자 그대로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피상적인 뜻만 알았지 진정한 의미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테일러 목사님은 주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 이 책에서 온유한 태도가 무엇인지 간결하고 명확하게 서술했다.

“온유한 사람은 남을 속이지 않으면서 자신의 성품을 감춘다. ‘신사적’이라는 말이 그들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좋은 말이다. 그들은 예절, 존경, 혹은 명예라는 명목 하에 자신을 절대 과대포장하지 않는다. 예수님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신사다. 왜냐하면 온유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온유함이란 숨겨진 그리고 고요한 성품을 의미한다. 온유한 사람의 행동을 베드로전서 3장 4절에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마음에 숨겨두는 행동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므로 잠언 29장 11절에 따르면 위대한 지혜는 자기 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않고 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온유함이다. 온유한 사람들은 천성이 부드럽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다. 온유함은 정직한 삶으로 구체화되며 온유한 사람의 태도는 어떤 일에 대하여 침묵하며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특정한 정보를 흘리지 않는다. 즉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면 스스로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이 가운데 내 가슴을 콕콕 찌르는 구절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는 데 있어서 신중하다’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그간 20년 동안 이미지 컨설턴트라는 전문직에 종사해 왔다. 대중 강의나 개인의 이미지 컨설팅을 하면서 업무 성격상 상대에게 조언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러다보니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의 직업의식입네’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 전문 지식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는 상대가 묻지도 않았는데 ‘그들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식으로 내 전문 지식정보를 제공하여 많은 실수를 남발했던 것 같다.

“옷 색깔을 그렇게 매치하는 것보다 이런 색으로 코디해 보세요.”

말의 신중함과 고요한 성품

“헤어스타일이 별로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아예 미용실을 바꿔보시면 어떠세요?”

“눈 밑에 지방 세포가 불룩하면 답답한 이미지를 줄 수 있어요. 지방 제거술을 받아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하는 식이었다. 물론 그런 정보를 흘린 나의 동기는 순전히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에서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들에게 혼란스러움과 상처까지 전달했으리라. 나는 이 구절들을 몇 번씩 읽으면서 내가 부족한 것이 온유함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온유한 삶과 상반되는 삶을 살았는지. 내 알량한 지식과 지혜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귀한 진리를 얻었다.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들을 보며 과거의 온유하지 못했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주님의 온유함과 ‘젠틀맨 십(GentleMan Ship)’으로 무장해 거듭난 크리스천의 잎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