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의 바둑이야기] 원성진, 남은 것은 세계대회 우승 뿐

입력 2011-11-09 17:47


선의의 경쟁자인 라이벌이 있다는 사실은 발전 가능성을 봤을 때 더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매번 비교대상이 된다는 것은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동갑내기 라이벌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원성진은 1986년생으로 박영훈 최철한과 함께 송아지 삼총사로 불렸다. 어린 시절부터 기재가 출중했던 이들은 주변의 관심만큼이나 잘 성장해 주었다. 하지만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큰 승부들이 이어졌고, 중요한 고비의 순간에서 이들의 희비는 엇갈렸다.

가장 먼저 박영훈이 2001년 천원전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성큼 앞서나갔다. 각기 다른 기전에서는 고루 성적을 냈지만 타이틀 홀더가 된다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 그리고 2년 후에 최철한과 원성진이 드디어 결승전에서 만났다. 그것도 박영훈이 첫 우승컵을 안았던 천원전에서.

두 사람에게는 양보할 수 없는 건곤일척의 승부였다. 그리고 가혹한 운명의 장난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결과는 최철한의 3대 1 승리. 박영훈의 뒤를 이어 최철한이 천원전 우승컵을 안았다. 그때부터 이들의 길은 극명하게 갈렸다. 최철한은 여세를 몰아 줄줄이 국내 타이틀을 석권했고, 박영훈은 2004년 후지쓰배를 차지하며 생애 첫 세계대회 우승과 최단기간 9단 승단의 기록을 세우고 이듬해 중환배 세계대회 우승까지 했다.

하지만 원성진은 그 이후 급격히 무너졌다. 아주 긴 터널과도 같은 슬럼프가 이어졌다. 주변에서 지켜보기에 참 안쓰러운 시기였다. 그 힘든 시기를 원성진은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승부의 길이 갈린 시기에도 이들은 가장 친한 친구였고 언제나 함께했다. 그리고 2009년 최철한 역시 응씨배 세계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다 보면 언젠가 기회는 오는 것일까?

원성진도 2007년 한 맺힌 천원전에서 첫 우승을 차지하고 9단이 됐다. 두 친구들보다는 좀 늦었지만 꿋꿋하게 견디며 우보천리로 앞을 향해 나아갔다. 지난해와 올해는 결정적인 승부에서 준우승도 많았지만 GS칼텍스배 우승을 차지하고 국내랭킹 2위까지 올랐다. 그리고 이번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에 진출하며 첫 세계대회 결승무대를 밟게 됐다.

이제 남은 것은 세계대회 우승뿐이다. 조금은 늦었지만 다시 두 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요즘은 더 앞서나가고 있다. “우승하지 못하면 팬들이 기억해 주지 않을 것 같아 꼭 우승하겠다”는 그의 말에는 참 많은 사연이 담겨 있다. 평소 ‘낭중지추’라는 말을 장난스레 잘하는 원성진. 주머니 속의 송곳같이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아무리 숨으려 해도 드러나는 것처럼, 이번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구리를 꺾고 세계적으로 더 화려하게 드러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본다.

<프로 2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