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 1호 목소리 전아 “말 잘하는 기술? 혼잣말부터…”

입력 2011-11-09 18:01


1980년대 우리나라에서 일제(日製) 만화영화 ‘독수리 오형제’의 인기는 신드롬에 가까웠다. 그 시절 보자기를 그들의 망토 삼아 둘러보지 않은 사내아이는 드물었다. 주인공들처럼 오토바이 헬멧을 쓰고 나타난 아이는 선망의 대상이 됐다. 지구 수호자가 되고 싶은 충동에 아이들은 열병을 앓다가 지구 대신 동네를 지키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영웅적 욕구’를 배설했다. 역할 배정이 난제였다. 너나없이 주인공 5명 중 간판 멤버 1호를 하겠다며 고집을 부렸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 가장 리더십 있는 아이가 1호를 맡고, 그와 막판까지 경쟁한 아이가 2호를 하는 것이 당대 놀이터의 법칙이었다.

“섭리랄까? 독수리 오형제 성우들도 주인공을 닮았었죠. 제가 지금은 살이 좀 쪘는데 젊었을 땐 샤프하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방송국 성우실장도 했지만 (1호처럼) 리더십이 좀 있었죠.”

독수리 오형제의 목소리는 동시대 정서를 좇아 10여년간 3차례 이상 재녹음됐다. 79년 10월∼이듬해 8월 처음 방영된 독수리 오형제에서 1호 목소리를 냈던 성우가 전아(63) 서울예교회 목사다.

그는 73년 TBC(동양방송)에 입사해 우주 해적을 소재로 한 만화영화 ‘하록 선장’, 라디오 홈드라마 ‘아차부인 재치부인’ 등에서 주연을 했다. 현재는 말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다움스피치센터를 운영하면서 한국스피치강사협회장을 맡고 있다. 성우로서 최고 인기를 구가한 건 역시 독수리 오형제 때다.

“아주 독보적이었죠. 대적할 만한 프로그램이 없었어요. 얼굴 좀 보자는 전화가 많았는데 안 만났어요. 나는 ‘당신 상상 속의 그 사람을 그대로 만나라. 그 인물을 깨고 싶지 않다’고 답변했어요.”

독수리 오형제는 90년대 말 호칭 논란에 휩싸였다. 진원지는 PC통신이었다.

-그들은 독수리 오형제가 아니라 ‘오남매’라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3호가 여자거든요.

“오, 그게 맞네. 그런데 남매라는 말이 주는 뉘앙스는 영웅의 타이틀이나 브랜드로서는 약해요. ‘형제’가 주는 힘이 있잖아요. 숫자 5도 힘의 수예요. 다섯!” 그는 손바닥을 꽉 움켰다.

주인공 5명 가운데 상징 새가 독수리인 건 1호뿐이라는 점은 논란을 부채질했다. 2∼5호는 콘도르 백조 제비 부엉이다. ‘조류 오남매’로 이름을 뜯어고쳐야 옳다는 우스개가 한때 나돌았다는 전언에 전 목사는 무릎을 쳤다.

“독수리 오형제를 개인적으로도 좋아해요. 날아오르는 것에 대한 낭만이 있거든요. 내 사인도 이렇게 날개를 그려요.” 그는 백지에 통통한 새 한 마리를 일필휘지로 갈겨 그렸다.

-독수리인가요.

“비둘기예요.”

그는 후루룩, 자신이 탄 커피를 한 모금 빨았다.

“어릴 때 하늘 별 구름 무지개, 이런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이사야서 40장 31절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인데 내가 아주 좋아해요.”

-직접 날진 못해도 인기는 하늘을 찔렀겠습니다.

“가짜 전아가 생겼을 정도죠. 내가 전도사 때 가짜 전아가 오르간 회사랑 제휴해서 악기를 판다는 말이 들리더라고요. 나중에 ‘전아 전도사 앞’이라고 온 편지를 하나 받았는데 어떤 여자가 보낸 거예요. 뜯어보니까 ‘나는 전도사님에게 모든 걸 드렸는데 ….’ 가짜가 내 명성 팔아서 사고를 친 거지.”

그의 말은 고저장단(高低長短)이 풍요로웠다. 일화를 전할 때는 말투 표정 몸동작까지 옮겼다.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이 눈앞에 드러났다.

“방영 중엔 평소에도 독수리 오형제의 자태로 살았어요. 생활 자체가 연습인 거죠. 방송이 완전히 끝나면 그런 가상공간에서 꿈꾸던 왕자병이 깨지는 거예요. 허탈해지죠.”

그는 학창시절 연극에 빠져 살았다. 초등학생 때 운동장 조회대에 올라가서 벌인 1인극이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첫 공연이다. 중2 때 충남 공주에서 상경하며 전학한 이대부중에선 팝송 ‘케세라세라’(될 대로 되라)를 부르고 명물이 됐다.

서라벌고에선 10회 연극부장을 했다. 배우 한인수(9회) 서인석(11회) 강태기(12회)가 서라벌고 연극부장 출신이다. 전 목사는 전국 중고교 연극경연대회에서 연기상을 받고 68년 서울연극학교(서울예술대학 전신)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산삼’이라는 작품에서 가련한 소년 역할을 했어요. 엄마 병을 고치기 위해 산삼을 훔치다 걸려요. 선배가 산삼 아저씨였는데 매 맞는 장면에서 내가 진짜 때려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사정없이 때리는 바람에 몽둥이가 뚝 부러져서 객석으로 날아간 거예요. 그 연기로 전국 1등을 했죠.”

-부모는 연기하겠다는 아들을 가만두던가요.

“아버지가 반대했죠. ‘그 무슨 광대 같은 짓을 하느냐. 한 번쯤 해 보는 건 좋지만 업으로 삼는 건 유익하지 않다’면서. 등록금도 안 줬어요. 서라벌예대에 합격했는데 그래서 서울연극학교에 갔어요.”

-대학에서도 잘 나갔습니까.

“학교에서 하는 걸로 성이 안 차서 바깥에서도 ‘불무대’라는 연극단을 만들었어요. 전유성 서유석 이연실씨랑 착한 일 한다고 고아원 교도소 가서 공연했죠. 전유성은 서라벌고 동기였어요.”

-불(火)과 인연이 있네요. 독수리 오형제도 불새로 변신하지 않습니까.

“내가 불을 굉장히 좋아해요. 여섯 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뭘 갖고 놀다가 잃어버렸다고 아버님이 날 교실에 묶었어요. 그 상태로 혼자 밤을 샜죠. 법대 교수셨는데 보통 엄한 분이 아니었어요. 나는 다음날 분노 때문에 집에 불을 질렀다니까. 헛간에 지른 게 안채로 타고 들어갔어요. 그때 소방수 세 명이 뒤에 매달린 불자동차가 윙 하고 왔는데, 불을 꺼줘서 그랬는지 그렇게 멋있었어요.”

그가 85년 연예인교회 10주년을 맞아 극본을 쓴 뮤지컬은 ‘타오르게 하소서’였다. 예수와 순교자 주기철 목사의 이야기로 구성된 이 연극은 신영균 고은아 강효실 구봉서 서수남 윤복희 서인석 등 스타급 배우와 가수가 대거 출연해 이목을 끌었다. MBC는 3000만원에 사 가서 성탄특집으로 썼다.

“예수가 채찍 맞는 걸로 시작해요. 나는 그 역을 최민수한테 맡겼어요. 애가 그때 막 이러고(건들대고) 다니니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저런 깡패를 예수 시키느냐’고 했어요. 그런데 딱 해 보니 진짜 예수 같은 거야. 최민수가 뜨기 시작했지. 애가 심성은 착한데 반항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아요.”

-성우가 된 건 배가 고팠던 탓입니까.

“불란서문화원이나 대학로 소극장에서 활동을 많이 했어요. 하다 보니 빚도 져서 용돈이나 벌려고 성우 시험을 쳤는데 돼 버린 거야. 돈 때문에 시작했는데 그걸 12년이나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교한 언어를 훈련하는 과정이었죠. 그게 지금 바른 언어를 교육하는 바탕이 된 거예요.”

-전 목사의 말하기 철학은 다른 말하기 이론과 다릅니까.

“일반 화술은 성공 화술이에요. 다른 사람을 설복하고 감동시켜서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가는 게 핵심이죠. 그런 말하기 기술은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무기를 하나 더 갖는 거죠. 그런데 무기를 가진 사람끼리 만나면 싸움은 더 커지잖아요. 저는 성경에서 언어의 원형을 찾자는 거예요. 하나님의 언어, 성경의 언어는 말의 칼을 버리고 무장을 해제하는 거죠.”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손해 보는 화술 아닙니까.

“그런 관점에선 손해가 되죠. 성경엔 역설적인 권면이 많이 나와요. 주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높아지고자 하면 낮아져라. 이런 교훈을 보면 거꾸로 했을 때 품격을 찾는 경우가 많아요. 한 장면으로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전체를 놓고 보면 엄청난 유익을 얻는 거예요. 하늘나라의 언어라는 건 내가 손해를 좀 보더라도 하나님이 뭘 원하시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기독교신자나 납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안 믿는 사람 입장에선 믿음에 관한 모든 게 무의미하죠. 거기 맞추기 위해 신앙을 양보할 순 없어요. 다만 기독교인이 본이 돼서 우리가 가는 길이 복된 길, 평안의 길이라는 걸 보여줘야죠. 그럴 때 감화력을 갖는 거예요.”

-전 목사는 좋은 말만 하고 살았습니까.

“누구보다 상처 주는 말을 많이 했죠. 성격이 불같았어요. 항상 캡틴(대장) 역할을 하다 보니 내가 다른 사람을 리드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죠. 누가 나를 리드하면 불쾌하고. 자꾸 남을 지적해서 별명이 핀셋이었어요. 다음 별명은 폭탄. 연극부장 때 동급생인 부원은 나한테 ‘빠따’를 한 40대 맞았어요. 그 친구는 지금도 날 싫어해. 그때 내 가슴이 이렇게 올라가 있었어요.”

그는 가슴을 펴서 쑥 들어올렸다.

“이 상태. 항상 장전된 총알 같았던 거예요. 공격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이죠. 누가 뭐라고 하면 ‘뭐요?’부터 나와요. 이걸(가슴) 내려놓는 훈련을 많이 했어요.”

-이제 말 잘하는 기술을 알려주십시오.

“혼잣말을 우선 잘해야 돼요. 언어학적으로 제1의 형식이 독백이에요. 어린아이가 말문 터지기 전에 옹알이를 하잖아요. 자신과 회의하듯 얘기할 필요가 있어요. 요즘에는 이 독백을 많이 상실했어요. 말이 머리에서만 나가니까 건조해요. 옛날 사람들은 자문자답을 많이 했어요. 독백을 거치면 진성(眞性)이 나와요. 시 쓰는 사람이 사색하면서 좋은 시어를 발견하듯이.”

-내용이 같아도 목소리 좋은 사람의 말이 더 호소력 있습니다. 불공평한 거 아닙니까.

“그렇게 보면 세상 모든 달란트(재능)가 불공평해요. 타고난 목소리가 좀 안 좋아도 고칠 수 있어요. 숨은 들이쉬고 내쉬잖아요. 그런데 들이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러니 목에 무리가 오고 탁한 소리가 되는 거죠. 노래할 때랑 같아요. 충분히 숨을 들이켜서 호흡에 소리를 싣고, 위에서 아래로 흘려보내듯이 말하면 돼요.”

-전 목사는 애초에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났습니까.

“그랬지만 불리한 여건이었어요. 편도선 양이 너무 많아서 중1 때 3번에 걸쳐 수술을 했거든. 원래 편도선 수술을 하면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요. 그래서 부담이 안 가게 최대한 부드럽게 소리를 내려고 노력했어요. 또 연극 활동을 하면서 연마됐다고 할까.”

-여자들은 목소리 좋은 남자한테 호감을 느낀답니다. 목소리 덕 좀 봤습니까.

“너무 많이 봤죠. 동료 성우 결혼식에서 축혼시를 낭독했는데 데이트 신청이 10건 이상 들어왔어요. 목회하고서는 내 목소리 때문에 교회 등록했다는 분도 있어요.”

글 강창욱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