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혼란’] 與 “상임위 장소 바꿔서라도 처리”-野 “날치기 않겠다 약속 기억하라”

입력 2011-11-08 22:09

여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여야는 8일 서로를 향해 맹비난을 퍼부으며 신경전을 펼쳤다. 특히 한나라당이 외교통일통상위원회 전체회의를 열어 비준동의안을 기습 처리할 수 있음을 시사해 하루 종일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내년 총선 및 야권통합 전략으로 한·미 FTA를 반대하고 있다”고 민주당을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은 야당 의원들이 외통위 전체회의장을 걸어잠근 채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해 제3의 장소에서 상임위를 열어 비준동의안을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혹자는 국민투표를 이야기하고, 총선 후로 미뤄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국민에게 지지받을 수 없다”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고 해결하느냐가 우리의 쇄신과 변화의 완성”이라고 신속한 처리를 주문했다.

이주영 정책위의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자료를 인용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어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연구했다”며 “태스크포스까지 만들어 치밀하게 했던 노 전 대통령만큼은 욕되게 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서는 강행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청와대 김효재 정무수석이 전날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편지를 보내 “한·미 FTA가 반미 선동의 도구가 되고 있다”며 강행 처리를 독려한 것에 대한 불만도 쏟아졌다. 한나라당 소속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야당을 자극하고 여당에 ‘오더’를 내리는 듯한 오해를 주는 편지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쪽박을 깨는 일”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김 정무수석의 편지를 “날치기 돌격 명령” “어설픈 협박편지”로 규정하고 청와대의 처사를 강하게 성토했다. 김진표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미 FTA 반대 여론이 높아지니까 이명박 정권이 초조해하며 강행처리 으름장을 놓고 반대론자를 친북주의자로 매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원내대표는 황우여 원내대표와 남경필 외통위원장 등 한나라당 의원 22명이 물리력에 의한 의사진행에 동참하면 19대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것을 거론하며 “국민이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압박했다. 박영선 정책위의장은 “청와대 정무수석이 보수언론의 극우 컬럼니스트냐”고 비판한 뒤 “법무부 법무실장은 법무정치실장이 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병두 법무실장은 전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ISD의 위험이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외통위는 야당 의원들이 점거 중인 전체회의장 옆 소회의실에서 예산심사소위를 열고 관련 부처 및 기관의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의결했다. 그러나 회의장 주변에서는 “여당 외통위원들이 모처에 모여 있다” “한나라당이 의원총회를 열 계획이다” 등의 소문이 떠돌아 야당 관계자들을 긴장케 했다.

엄기영 유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