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집필기준안 확정… 색깔논쟁 거듭하다 ‘어정쩡 마무리’
입력 2011-11-08 18:32
교육과학기술부가 8일 발표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은 형식적으로는 한국역사연구회 등 11개 역사단체의 반발을 일정 부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내용상으론 교과부가 지난 8월 고시한 ‘역사교육 과정’ 내용을 그대로 유지했다. 어정쩡한 절충안인 셈이다.
교과부는 자유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병용했다. 집필기준 중 ‘대한민국의 발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4·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부 설명에서 “4·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발전과정을 정치 변동과 민주화운동 등 그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본 원칙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교과부 김관복 학교지원국장은 “교과서 검정을 신청할 때는 가급적 자유민주주의라고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일선 교과서에는 ‘민주주의’라는 표현 대신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들어갈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이에 대해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극소수를 제외한 대다수 역사학자가 ‘민주주의’라는 표현이 맞는다고 의견을 모으고 성명도 냈다”며 “그동안 써온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굳이 바꾸려는 의도를 알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교과부는 기존의 ‘독재’라는 직접적인 표현도 완화해 ‘독재화’로 바꿨다. 교과부는 지난달 공청회에서는 ‘독재’라는 표현이 아예 빠진 것에 비해 역사학계의 요구를 반영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역사학계에서는 이런 표현이 현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등에 나오는 ‘이승만 정부의 장기독재’ ‘박정희 정부는 독재체제를 강화’라고 명시한 것보다는 크게 후퇴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새 집필기준은 또 ‘유엔의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 받은 사실에 유의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이인재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은 “1948년 유엔 총회 결의는 한반도 전체가 아니라 유엔임시위원단의 감시 하에 선거가 실시된 38선 이남 지역에 한정된 것”이라며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유일정부는 남한이라면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보수 성향의 역사학자 중에는 이번 조치가 합당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교육과정에 이미 ‘자유민주주의’로 고시했기 때문에 집필기준은 자유민주주의가 무슨 의미인지를 부연한 것”이라며 “유엔 총회 결의도 당시 시점에서는 남한만 합법정부를 인정한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교과부는 내년 4월에 역사 교과서 검정 신청을 받을 계획이며 검정 절차를 거쳐 8월쯤 검정 합격 교과서를 최종 결정할 전망이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