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국회 오물투척
입력 2011-11-08 17:38
1966년 9월 22일 국회 대정부 질문 발언권을 얻은 무소속 김두한 의원은 마분지 상자를 들고 의정단상에 올랐다. 그는 사카린 밀수 사건을 따지다가 국무위원석으로 다가가 “국민이 주는 사카린이니 골고루 나눠 먹으라”고 외치며 상자에 든 오물을 뿌렸다.
그해 5월 한국비료가 건설자재를 가장해 사카린 원료 60t을 밀수입한 사실이 적발됐으나 국세청으로부터 추징금만 받고 흐지부지됐다. 밀수 수익이 집권당 정치자금으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들이 떠도는 상황이었다. 김 의원은 오물을 기미독립선언이 있었던 파고다공원의 공중변소에서 퍼왔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으로 내각 총사퇴 결의가 있은 뒤 장기영 부총리 해임을 비롯한 개각이 이뤄졌다. 김 의원은 의원직을 잃고 구속 수감됐다. 국회 특위가 구성됐으나 정쟁에 휘말려 흐지부지됐다.
국회를 겨냥한 범죄 가운데 가장 악랄했던 것은 1605년 영국의 ‘화약음모 사건’이다. 무려 36배럴이나 되는 폭약을 옛 영국 의사당 지하에 쌓아놓고 의회 개막일에 맞춰 제임스 1세와 의원들을 몰살시키려던 사건이다. 가톨릭 무관용 정책에 대한 불만이 원인이었던 이 사건은 익명의 제보 편지로 인해 실패했고 폭약을 지키던 가이 포크스가 거사 직전날 밤 현장에서 검거됐다. 10년간 해외의 전쟁터를 누비던 포크스는 런던탑에서 모진 고문을 받은 끝에 능지처참 당했다. 그의 검거를 기념해 ‘가이 포크스 데이’가 지정됐다. 이날 헌옷이나 신문으로 만든 인형 몸체에 그로테스크한 마스크를 씌운 ‘가이 인형’을 불에 태우고 불꽃놀이를 하는 게 영국의 민속이 됐다. 대중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인물들을 가이 인형으로 만들기도 했다.
포크스는 1841년 윌리엄 해리슨 에인스워스의 소설 ‘가이 포크스’에서 동정적으로 묘사된 이후 동화나 만화에서 액션 영웅으로 탈바꿈됐다. 2006년 개봉된 영화 ‘브이 포 벤데타’는 그를 권력에 맞선 혁명가로 재해석했다. 영화에 등장한, 길게 찢어진 입과 콧수염에 기괴하게 웃는 모습의 가이 포크스 가면은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에 등장해 부유층 탐욕을 규탄하는 상징이 됐다.
7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50대 남성이 인분 20ℓ를 넣은 페인트통을 차량에 싣고 들어가 본관 앞 도로에 뿌린 사건이 일어났다. 동기가 어떻든 그의 의사표현 방식은 부적절하며, 범법행위다. 하지만 오물투척을 사법처리한다고 정치권을 향한 대중의 불신과 불만까지 잠재울 수는 없다. 국회가 제 역할을 되찾는 게 더 중요하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