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박원순 시장은 고을 원님인가
입력 2011-11-08 17:44
취임 열흘을 갓 넘긴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걸음이 크다.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하니 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계측기를 들이댔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숨진 노숙인을 조문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고, 서울역 구내에서 잠자는 노숙인을 쫓아내지 말라고 코레일에 요청했다. 민원인들을 피하지 않고 면담해 의견을 경청했다. 새로운 시장의 새로운 모습이다. 민생의 측면에서는 신선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현안에 대한 의사결정과 행동을 보면 우려스럽다. 공원에서의 흡연구역 설치 계획을 유보키로 한 결정이 대표적이다. 물론 결정 내용은 좋다. 금연공원을 지정해 놓고 다시 흡연구역을 설치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 본보를 비롯한 많은 언론의 지적이었다. 문제는 과정이다. 박 시장은 ‘금연전도사’인 박재갑 교수의 지적에 공감했다며 전격적으로 유보 결정을 내렸다.
여기서 시민단체 출신의 한계가 드러난다. 금연공원을 지정하고 다시 흡연구역을 정할 때는 의견수렴과 행정 절차를 밟았을 터인데, 시장은 그런 과정을 무시하고 마치 옛날 고을의 사또처럼 즉흥적으로 결정하고 직원들에게 통보했다. 아무리 옳은 결정이라도 적절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시장이 이렇게 나서면 공무원들이 손을 놓는다. 기껏 기안하고 결재를 얻어 이루어진 행정이 시장 말 한 마디에 뒤집힌다면 누가 나서서 일을 하겠는가. 공무원들은 시장 입만 쳐다보고, 시장의 발길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시키는 일만 하지 말고 가끔 대들기도 하라”고 말해놓고 이런 스타일을 견지하면 공무원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한·미 FTA에 대한 박 시장의 행동도 시민들에게 걱정을 끼치기는 매한가지다. 이미 정부가 약속한 서울시 세수 감소분 260억원을 보전해 달라는 요구는 업무에 어두운 초임 시장의 해프닝이라 치자. 그러나 우리나라가 연방국가도 아닌데 중앙정부의 외교통상 부문에까지 의견서를 낸 것은 지방정부 수장의 영역이 아니다. 이렇듯 정치와 행정을 구분 못 하니 ‘사또’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