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박희선] ‘돼지코 세이버’
입력 2011-11-08 17:38
아침운동 삼아 공원을 걷다가 재미있는 제품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집안에서 사용도 하지 않으면서 콘센트에 무심히 연결돼 있는 전자제품 코드를 뽑아 그 끝에 꾹 눌러 놓으면 똑딱똑딱 타이머가 작동하는 액세서리다. 콘센트처럼 코드를 꽂을 구멍 두 개가 필요할 테니 잠깐 ‘돼지코 세이버’라고 이름을 붙여보자! 타이머를 작동할 작은 배터리만 끼우면 되는 초절전 제품으로, 전자제품을 사용하기 위해 다시 코드를 뽑을 때 스스로 절약에 기여한 시간과 절전량을 알려준다.
우리가 TV나 컴퓨터를 끈 상태에서도 콘센트를 통해 계속 소비되는 전기를 ‘대기전력’이라 하는데, 보통 가정에서 내는 전기요금의 11∼15%에 달한다. 일명 ‘돼지코 세이버’는 이렇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잡아 시간으로 알려주고 실제로 소비자에게 전기료 절감의 만족감을 안겨주는 착한 상품이 될 수 있다. 사실 TV나 컴퓨터를 끄고 전원 코드를 뽑기 위해 콘센트까지 걸어가기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닌데, 이런 제품이 있다면 내가 절약한 에너지양을 눈으로 확인하는 재미를 위해서라도 즐거운 습관으로 받아들일 만하지 않을까? 만보기를 차면 안 하던 달리기도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친환경 소비가 트렌드로 떠오른 요즘은 대기전력을 완전 차단해 주는 보조 콘센트 제품도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이런 아이디어쯤 별것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제품들은 가격도 비싼 데다 일단 재미가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의미만 있고 재미는 없는 곳에는 돈을 잘 쓰지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에너지 효율이 90%나 된다지만 일반 제품보다 월등히 비싼 LED 전구를 살까 말까 망설이다 내려놓은 경험이 다들 한번쯤은 있을 것이다.
절전양을 알려주는 ‘돼지코 세이버’는 아무리 생각해도 매력적이다. 코드를 꽂을 돼지코 같은 구멍이 두 개 있어야 할 테니, 전체도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꽂을 때마다 전기요금이 절약되는 진짜 돼지저금통입니다”와 같은 익살스러운 광고 카피와 함께 소개한다면?
아이디어란 참 재미있어서 한번 떠오르면 제멋대로 세포분열 하듯 커져간다. 예술가나 과학자, 발명가들이 나르시시즘에 잘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근데, 이 제품이 시장에 나온다면 정말 좋아할 만한 의외의 소비층이 있기는 하다. 낮에 집에 혼자 있는 아이들이 TV나 컴퓨터에만 빠져 있을까 봐 전전긍긍인 학부모들. 출근할 때 전원 코드를 뽑아서 ‘돼지코 세이버’에 꽂아 놓으면 아이들은 절대 손댈 수 없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얘기가 너무 옆길로 빠졌다고?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사실은 이 지점이 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었다. 주말 아침부터 아이 때문에 씩씩거리며 달리기를 하다가 문득 비약을 거듭하며 완성된 생활밀착형 아이디어라고나 할까.
박희선 생태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