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의 시편] 깊은 묵상

입력 2011-11-08 17:44


깊은 묵상은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성경적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동양적 묵상과 성경적 묵상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동양적 묵상은 비움을 강조한다. 반면에 성경적 묵상은 비움을 무시하지 않지만 궁극적 목표는 말씀을 채우고, 말씀으로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묵상은 말씀을 붙잡는 묵상이다. 말씀을 떠나서는 깊은 묵상의 세계로 결코 들어갈 수 없다. 우리는 묵상을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해야 한다. 말씀은 모든 깊음의 원천이다. 깊음의 원천인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는 깊음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깊은 묵상을 위해 말씀을 열 때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신비가 열린다. 말씀을 열 때 하나님의 깊은 세계가 열린다. 말씀보다 더 깊은 것은 없다. 하나님의 깊음은 말씀 속에 담겨 있다. 물론 하나님의 깊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통해서도 경험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히 11:3). 하나님의 말씀의 깊이와 신비와 오묘함으로부터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깊음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깊은 묵상은 우리의 머리에서 시작된다.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된다. 말씀이 우리의 생각 속에 들어올 때 우리 지성이 숨을 쉰다. 지성이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깊은 묵상은 머리에 머물지 않고 가슴으로 내려온다. 가슴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말씀이 우리의 존재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거리다. 말씀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 위해서는 말씀을 사랑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깊은 묵상은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품게 된다. 사랑하는 것을 보게 되고, 사랑하는 것만큼 깨닫게 된다. 성 그레고리는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알게 된다”고 말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우리 안에 머물고, 우리의 존재의 한 부분이 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을 닮게 된다. 머리에서 시작한 말씀 묵상이 사랑을 통해 가슴으로 내려오고, 그것이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날 때 묵상은 깊어진다. 그때 말씀은 우리의 핏속에 흐르고, 우리에게 생명을 부여해준다. 말씀을 묵상할 때, 영적 영양분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우리 영적 혈액의 일부가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말씀이 육신이 되신 주님의 모습을 닮아 가게 된다.

강준민 목사 (LA새생명비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