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의 교회이야기] 가을의 전설
입력 2011-11-08 17:50
3명의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가을 산행을 했다. ‘가을의 전설’을 만들자며 오래 전 약속한 산행이었다. 두 명은 김포와 구리에서 80∼90명 남짓한 성도들이 출석하는 교회의 담임. 다른 한 목회자는 인천에서 20여명의 성도를 인도하고 있다.
산행은 오후 늦게야 시작됐다. 인천의 목회자에게 급한 일이 생겼기 때문. “교회에 출석할지도 모를 한 명으로부터 상담 요청 연락을 받았어요. 하필이면 산행하는 날 오전에….” ‘한 명의 성도’에 목숨 걸어야 하는 그 때문에 파주 심학산 둘레길 산행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시작됐다. 짧은 가을 산행은 유쾌했다.
낙엽을 밟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구리의 목회자는 최근 큰 나무 난로를 샀다고 자랑했다. “저녁마다 기도회를 끝낸 후 성도들과 함께 고구마 구워 먹는 맛이 기가 막힙니다. 장로님들은 재가 나온다고 반대했지만 끝까지 밀어붙였어요(하하). 지금은 모두가 좋아 난리입니다. 사실,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추억거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교회는 그리움의 공동체잖아요.”
김포의 목회자는 지난 주일 강화도의 한 시골 교회에 전 성도들과 함께 가서 예배를 드렸다고 말했다. 정성껏 마련한 음식을 나눠 먹고 족구와 피구를 하면서 가을의 정취를 만끽했다는 것이다. 그림이 그려졌다. 시골교회들의 아름다운 동행….
위의 두 교회는 자립하는 교회다. 자립하기까지 10년 남짓 걸렸다. 어려움은 많았지만 한눈팔지 않고 성실히 목회한 지난날이었단다.
인천의 교회 상황은 이 두 교회보다 어렵다. 매주일 교회 방문자는 이어지지만 정착자가 부족했다. 어렵게 한 명이 정착하면 기존 출석자들이 전근 등으로 떠나 양적 증가는 이뤄지지 못했다. “목회를 계속해야 할지 모르겠어. 몸도 힘들고….” 그러면서 말했다. “두 분 ‘대형교회 담임 목사님들’, 내게 영적 기(氣) 한번 넣어줘요.”
나름대로 모두 만만찮은 목회를 하고 있었지만 가을 산 둘레길을 돌 때에는 행복했다. “너무 욕심낼 필요 없어. 하나님 허락하신 만큼만 목회하고 가면 돼. 사실 교인들 많은 만큼 더 힘들지 않겠어? 매일 주어진 여건 하에서 행복을 느끼면 되지 뭐. 자, 한번 외쳐보자고. ‘행복한 교회, 행복한 목사 파이팅’”
작은 교회 목회자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다. “제가 더 노력해야 했는데…. 진액을 쏟아 더 열심히 설교 준비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교회가 부흥하지 못했어요.”
아니, 정말 아니다. 모든 소위 ‘성공한 목회자’들이 매번 설교준비에 진액을 쏟는 것은 아니다. 그들 모두가 나름대로 누리고 산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여, 오늘 잠시 목회의 짐을 훨훨 벗고 늦가을 산행에 나서 보시라. 뭐라도 좋으니 누려 보시라. 가족, 성도들과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 보시라. 오늘, 전국의 수많은 목회자들이 나와 함께 가을 산행을 한 3명 목회자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서 목회하고 있다. 이것은 현실이다!
이태형 종교부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