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정당정치] “집권만 노린 개혁 한계… 노동·세대·복지 黨이 껴안아라”

입력 2011-11-07 21:45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개혁의 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끝난 이후 여야 모두 당내·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정당의 반파(半破)’, ‘준 혁명적 열기’ 같은 말들이 나올 정도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고민은 기성 정당체제를 바꿀 묘책을 쉽게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서 연유한다. 지난 선거 결과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뜻은 명확하다. 현재의 정당으론 안 된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로부터 우리 정당의 개혁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정당의 위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정당개혁 바람이 거세지만 벌써부터 회의론이 팽배한 게 사실이다. 정당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데 여야를 막론하고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개혁 실패의 책임이 있는 기존 정당 리더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은 “인물이건 세대건 의제건 변화가 필요하고 변화를 하려면 현재 기득권을 가진 리더들이 희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권통합에 참여하는 진보정당들에게 비례대표 자리를 다주면 어떻겠느냐고 누가 트위터에서 얘기하던데, 최소한 그 정도는 돼야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며 “통합이나 연합을 하려면 정치권력의 배분을 논의해야 하는데 아무도 자기 것을 내놓지 않으면서 그게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정당개혁 논의의 출발점부터 잘못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의원을 지낸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현재 정당들의 개혁 의지를 불신한다. 윤 전 장관은 “정당개혁, 말만 들어도 신물이 난다”며 “개혁을 얘기하고 있지만 도무지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학자인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정당 내부의 힘으로는 정당을 개혁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 대표는 “중앙당이 노쇠화됐다. 또 평당원으로부터 도전이 와야 하는데 그게 지금 정당구조에서는 안 된다. 주문이 다 위로부터 나오는 구조다. 그렇다고 리더십이 안정돼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라며 “결국 현재 정당들이 큰 변화를 꾀하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정당 밖에서 정당개혁을 강제할 세력이 조직돼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당에 사망선고를 내린 ‘무당파’ 시민들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를 통해서 정치개혁 결과를 심판할 수 있겠지만 지금 진행되는 정당개혁 논의에는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세력 재편에 휩쓸려 가는 정당개혁=민주당 등 야권은 야권통합에 매달리고 있다. 여권에서도 박세일 선진통일연합 상임의장 등 보수시민세력과 통합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진행되는 정치권의 세력재편은 집권전략에 불과할 뿐 진정한 정당개혁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세를 불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자는 전략일 뿐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야권통합은 시민사회 리더 등을 일부 충원해 정당의 외연을 넓힌다는 측면은 있으나 근본적으로 기성 정치 엘리트들의 재구성에 불과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비슷한 지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나온다. 우제창 의원은 당 지도부의 야권통합 추진에 대해서 “국민은 명백하게 정치개혁을 요구하고 있는데 야권은 집권만이 곧 정치개혁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국민은 정치체질 개선을 주문하는데 정치체형 확대로 응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낙구 성공회대 겸임교수(민주당 손학규 대표 정책보좌관)도 “지금 야당의 정당개혁 논의는 야권통합으로 휩쓸려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정치화된 세력들 간의 통합이나 연합은 그들만의 파워게임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노동, 세대, 복지가 핵심=박 대표는 “정치권은 이번에도 약간의 변형을 통해 정당개혁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면서 근본적인 개혁은 외면하고 말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적 기반이 없는 정당체제가 지속됐다”며 “이걸 고치지 않고는 정당개혁이 어렵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정당의 대표성에 한계가 온 것 같다”고 진단하고 “기존 정당체제가 담아내지 못한 새로운 인물과 세대, 의제를 수용하는 것이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손 교수 역시 “기성 정당구조에서 대표되지 않은 가장 큰 부문은 노동과 세대”라며 “노동과 세대를 정당이 어떻게 대표할 수 있겠느냐가 정당개혁의 핵심적 질문”이라고 했다.

기성 정당이 대변하지 못한 세력으로 비정규직 등 노동계층을 꼽는 이들이 많다. 20∼30대 젊은 세대나 여성도 한국 정당에서 빈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복지나 고용, 분배 등의 의제도 취약했던 부분이다. 어떻게 이들을 정당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

박 대표는 ‘부분 연합’을 제안한다. 그는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민당이 당내에 노동위원회를 두고 이를 노동계에 맡기고 있고, 미국도 노조가 민주당의 가장 중요한 후원세력이 될 만큼 둘이 연결돼 있다”면서 “정당이 노동자 단체나 청년 조직과 부분연합을 이뤄 이들의 목소리를 정당구조 안으로 들여놓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고 주장했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정당 내부의 개혁 과제로 “의원들의 자율성이 보장되는 열린 정당체제, 특정 지역에 배타적 지지기반을 두는 지역패권정당의 탈피, 국민들이 공천권을 행사하는 상향식 공천제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