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후지모토 도시카즈] 라디오방송에 나타난 국민성
입력 2011-11-07 17:56
“정치·경제적 관심 뜨거운 한국인과 경쟁 대신 공생·행복 희구하는 일본인”
나의 아침은 매일 7시 KBS 라디오 뉴스와 함께 시작한다. 뉴스가 끝나면 홍지명 앵커가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의 2부가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시사 프로그램이라고 호언하고 있을 만큼 명실상부한 알찬 시사 프로그램이고 뉴스를 만든 정치가나 각계 인사들이 이른 시간의, 그것도 라디오방송인데도 총출연한다.
이것을 들으면 신문을 읽지 않아도 한국의 정치,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앵커의 진행도 절도가 있고 군더더기가 없어 좋다. NHK 라디오에는 이렇게 충실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이 없다. 일본 사람도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아니지만 한국 사람의 관심이 훨씬 뜨거운 것 같다. 대통령의 담화도 수시로 방송되는데 일본에서는 총리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은 없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갖는 정치적인 영향력은 일본보다 한국이 더 큰 것 같다.
KBS 라디오와 NHK 라디오의 또 하나 큰 차이는 KBS에 경제 프로그램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김방희 앵커가 매일 아침 진행하는 ‘성공예감’이다. 이것 또한 충실한 프로그램으로 한국 경제의 오늘과 세계 경제의 오늘이 잘 보인다. 경제용어도 알기 쉽게 풀어준다. 이런 프로그램 또한 NHK 라디오에는 없다.
그럼 일본인의 중심 라디오인 NHK 제일방송은 같은 시간대에 어떤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는가. 제1라디오의 아침 간판 프로그램은 ‘라디오 비타민’이다. 이 프로그램은 NHK의 남자 아나운서와 여성 성악가의 진행으로 매일 8시30분부터 3시간20분간 방송되는데 그 내용은 KBS 라디오와 사뭇 다르다.
‘라디오 비타민’은 그 제목이 뜻하는 대로 청취자에게 비타민을 흠뻑 주듯 일상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청취자가 보내온 레시피에 따라 요리를 만드는 코너, 육아 고민을 청취자와 함께 풀어주는 코너, 생활에 도움이 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소개하는 코너, 화제 인물과의 인터뷰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청취자들의 편지도 소개된다. ‘오늘 아침 해돋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들국화가 만발입니다’ ‘텃밭에 처음 심은 무를 수확했습니다’ 등 사소한 일상은 담은 편지들이다.
그러나 행복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사소한 것에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 편지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이 방송을 통해 얻은 정보로 주식거래에 성공할 수도 없고 부자가 될 수도 없겠지만 마음의 풍요로움과 평온 그리고 정신적인 행복은 느낄 수 있다.
아침부터 정당 대표들이 출연하거나 최신 경제정보를 전하는 ‘성공예감’ 같은 프로그램을 들으면 일본의 청취자들은 어떻게 느낄까? 아마 체할 것 같다. 정치에 대한 실망 때문인지 일본 사람들은 정가의 움직임에 대해서 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가 아니고 직선제도 아닌 것도 이유일지 모르겠다.
또 하나, ‘성공예감’의 성공이라는 말에도 위화감을 느낄지 모르겠다. 원래 성공이라는 말은 아주 좋은 말이고 누구나 다 성공을 꿈꾼다. 그런데도 왜 위화감을 느끼는가? 1990년대 초의 버블경제 붕괴라는 뼈저린 교훈, 그리고 그 후의 잃어버린 10년, 아니 20년을 겪으면서 일본사람들은 경제적인 성공에 이제 그렇게 큰 기대를 갖지 않게 된 것 같다. 경제적인 성공에 대신하는 가치관이 바로 마음의 행복이다. 성공에 따르게 마련인 경쟁에도 회의적인 사람이 적지 않다.
일본 사람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 중에 ‘세계에서 딱 한 송이밖에 없는 꽃’이라는 노래가 있다. ‘꽃집에 있는 크고 작고 다양한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고 각자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째서 이렇게 서로를 비교하고 싶어 할까? 넘버원이 되지 않아도 된다. 우리들은 세계에서 딱 한 송이밖에 없는 온리 원이니까’라는 이 노래는 경쟁이 아닌 공생의 노래다. 동일본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의 공생을 희구하는 프로그램이 일본에서는 더 늘어날 것 같다.
후지모토 도시카즈(경희대 초빙교수·전 NHK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