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손수호] 사회복지사에게 복지를!

입력 2011-11-08 01:04

나라가 다시 복지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새해 예산에서 보육과 노인복지 부문에 1조원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박원순의 서울시 역시 내년에 복지예산 3000억원을 증액할 것이라고 한다. 모든 시민이 일정 수준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복지라는 것이 돈으로만 해결되지 않는다. 1조원이니 3000억원이니 해도 거기에 공동체의 따뜻한 마음이 실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주는 사람의 기쁨과 받는 사람의 감동이 엮이지 않으면 그저 배급일 뿐이다.

여기서 기쁨과 감동을 엮는 사람이 사회복지사다. 신이 바빠서 보낸 사람이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바빠서 보낸 사람이 복지사라고 한다. 현장을 몸으로 뛰는 이들은 택배회사처럼 물건을 그냥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전달한다. 그들의 역할에 따라 복지의 질이 결정된다. 기껏 따뜻한 밥을 지어 놓고 찬밥이 배달되면 주고도 욕먹는다. 복지는 돈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현장에서 온기 전하는 그들

우리 사회가 그나마 온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에 힘입은 바 크다. 새내기복지상 일을 하면서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눈물겨웠다. 서울역 인근 노숙자센터에 근무하는 이정규씨는 술 취해 쓰러져 있는 부랑인을 시설로 옮기다가 기절한 적이 있다. 등에 업혀 있던 부랑인이 갑자기 욕을 하며 소주병으로 머리를 내리쳤기 때문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2005년 참여정부가 사회복지사업의 지방 이관을 결정하자 사회복지사들이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반대시위를 했다. 집회에 앞서 경찰에 신고를 하니 준수사항을 알려주었다. 이들은 규정에 맞춰 확성기를 썼고, 거리행진도 하지 않았다. 행사 후 쓰레기를 버리려다 분리수거가 안 된 쓰레기통을 보고 뒤집어 일일이 재분류했다. 시위 효과가 있을 리 없었다. 복지사들은 대개 이렇듯 착하고 순수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들의 선의에 기댈 수는 없다. 복지관 운영 규정에 정해진 사회복지사 초임은 150만원이지만 지방으로 가면 100만원 이하가 수두룩하다. 한나라당 고흥길 의원은 한 토론회에서 “내 딸이 사회복지사로 근무하고 있는데, 급여는 80만원 수준이다. 대부분의 복지사가 이런 환경에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복지사끼리 결혼하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된다거나, 부부 복지사는 자녀를 결식아동으로 만든다고 푸념한다.

보육교사는 어떤가. 근래 어린이집에서 급식 및 안전사고가 잇달아 발생했을 때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무성했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복지에는 무심했다. 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가정보육시설의 교사는 114만원으로 조사됐으나 100만원 아래로 내려가는 곳도 많다. 이런 대우를 하고도 최상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을까.

신나게 일하도록 부축할 필요

우리가 이런 현실에 눈 감는 것은 복지사를 자원봉사자와 구별하지 못하는 인식 때문이다. 이들에게 비전을 주지 않고는 아무리 돈을 퍼부어도 복지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회복지사들이 월급 100만원을 받아들고 건강한 웃음을 지을 수 없고, 복지공무원 1명이 800가구를 담당해서는 밥과 국이 식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론은 간단하다. 복지사업은 국가의 책무이기 때문에 복지사들의 처우 역시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 전달자가 기쁘면 받는 자의 기쁨이 배가되는 것이 복지의 속성이다. 열악한 근무 환경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복지사에게 자긍심을 안겨주기 위해 늘어나는 복지예산의 일정 부분은 전달자의 몫으로 돌리자. 특정 대학에 반에반값 등록금을 지원하는 것보다 시급한 일이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