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시각장애인 앵커 이창훈씨, 고정코너 진행
입력 2011-11-07 21:19
7일 낮 12시35분, KBS 1TV를 보던 시청자들은 조금은 놀라웠을 것이다. 한 시각장애인이 등장해 점자단말기를 손으로 훑어가며 매끈하게 뉴스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놀라움을 안겨준 사람은 지난 7월 KBS가 국내 최초로 장애인 앵커를 뽑을 때 52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이창훈(25)씨였다. 3개월간 보도국, 아나운서국 등에서 사내 교육을 받은 그는 이날 정오부터 방송된 ‘뉴스12’에서 ‘이창훈의 생활뉴스’라는 꼭지를 맡아 진행했다.
이씨는 “안녕하십니까”라는 인사를 시작으로 5분20초 동안 방송을 이끌었다. 그의 입을 통해 지난달 은행권 정기예금 증가폭이 1년 만에 최대였다는 뉴스, 서울시가 ‘희망·꿈나래 통장’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발음, 속도, 어조 어느 것 하나 비장애인 앵커와 다른 게 없었다.
뉴스가 끝나고 오후 1시쯤,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한 회의실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씨는 조금은 상기된 모습이었다. 그는 “연습할 때보다 오늘 조금 더 잘한 것 같다”며 뿌듯해했다.
“(발음이 꼬이는) 작은 실수가 있어서 아쉽습니다. 하지만 3개월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많은 장애인들이 방송에 진출해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앴으면 합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이씨는 생후 7개월 때 뇌수막염 후유증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차근차근 정규 교육과정을 밟아 올 초엔 서울 숭실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우선 1년 동안 ‘뉴스12’에서 마이크를 잡게 된다.
이씨는 앵커로서 자신의 장점을 자평해 달라는 질문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슨 상황이 와도) 떨지 않는 것만큼은 자신감이 있다”고 우스개 섞인 답변을 내놨다. 첫 방송에 매고 나온 하늘색 넥타이를 누가 골라준 건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를 묻자 “태어나서 색깔을 본 적이 없다. 넥타이는 코디님이 해주신 거다”며 미소 지었다.
보도국 임흥순 과학재난부장은 “생방송으로 매일 뉴스를 진행하도록 한다는 게 보도국으로서는 모험이지만 이왕 하는 거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했고, (오늘 방송은) 성공적이라고 자체 평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KBS는 이씨의 편의를 위해 최신 점자단말기와 점자프린터를 구입했다. 장애인 앵커도 매년 선발할 계획이다. 보도국 윤준호 편집주간은 “다문화가정이나 다른 사회적 소수자에게도 앵커의 문호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