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예수방랑기(21)
입력 2011-11-07 13:47
청년 예수 방랑기(21)
나 예수는 축구공이라오
사람들이 파도처럼 밀려들었습니다. 상암동 월드컵 축구장으로 서울시민들이 모두 쏟아져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한일 축구 빅 매치가 있답니다. 나 예수도 그 무리 속에 섞여서 떠밀리다시피 들어갔습니다.
내게는 실상 친구가 많으면서도 친구가 별로 없습니다. 오늘도 혈혈단신 혼자 구경을 나왔습니다. 경기시작 전부터 응원연습으로 시끄럽기 짝이 없었지만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고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교회로 파도처럼 몰려들도록 할 수 있을까?”
교회의 머리인 나 예수는 자나 깨나 영혼구원과 교회발전에 대한 생각이 앞섰습니다. 특히 교회에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풍조를 반전시켜야 했습니다.
“축구만 즐기지 말고 인생을 배우는 학습장이 되어야 할 텐데.”
그런 생각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우레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선수들이 입장했습니다. 한국팀은 빨강색, 일본팀은 하얀색 유니폼을 입었습니다. 일장기의 빨강색은 한국팀에게 입히고 백의민족의 흰색을 일본팀이 입고 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일본 팀이 먼저 볼을 찼습니다. 그러더니 그 볼을 받은 선수가 단숨에 한국팀 골을 향하여 저돌적으로 몰고 들어가 대포알처럼 롱슛을 했습니다. 골인이었습니다.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습작전이 탁월한 일본팀인 만큼 충분히 예상되는 전략이었습니다. 경기시작 2분 만에 골을 넣은 일본팀은 자신 만만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팀 응원팀이 불을 뿜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함성이 상암벌을 흔들었습니다. 마음을 가다듬은 한국팀 선수들도 일본팀 문전을 위협하기 시작했습니다. 응원석에서는 일본팀에 대한 야한 욕설도 간간히 들려왔습니다. 허지만 일본응원팀도 일 당 백이었습니다. 규모는 작아도 일장기를 흔들어대며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나 예수는 공교롭게도 두 응원팀 사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가끔 서로 야지를 놓았지만 큰 충돌은 없었습니다. 상대편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까닭도 있었습니다.
경기는 끝났습니다. 2대 2로 비겼습니다. 허지만 적지에서 싸운 걸 생각하면 일본이 사실상 이긴 경기라는 평가가 옆 사람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나 예수는 각 팀에서 한 청년씩 커피 하우스로 초청했습니다. 응원할 때 상대편에게 가장 야비한 언어폭탄을 퍼부었던 다혈질들입니다. 서툴지만 영어를 사용했습니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 사람은 말다툼을 한 판 벌였습니다. 마치 축구 연장전 같았습니다. 한국의 기름을 짜 먹은 일본은 백 배 사죄하고 즉각 보상하라는 건 물론 한국청년입니다. 일본이 한국 현대화에 기여한 걸 어찌 몰라주느냐는 건 일본청년입니다.
두 사람의 감정을 누그러뜨리기 위하여 커피도 주문하고 서로를 소개하도록 해서 대화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각각 일본과 한국의 장래를 짊어지고 나갈 장래성 있는 일꾼들이라고 격려도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도 일본도 축구공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경기 내내 발길질만 당하고도 그것을 행복한 사명으로 삼는 그런 축구공 말입니다.”
두 청년은 의외의 발상을 듣고 좀 당황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허지만 실상은 그 말 한 마디 하려고 커피 석 잔을 기분 좋게 쏘았습니다.
그래도 감춰진 비밀 하나가 있습니다. 나 예수가 바로 그 축구공이라는 사실입니다. 해골운동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는 너무 많이 맞아서 시체가 되었었으니까요.
이태형 선임기자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