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의 명과 암] “스마트 시대 여는 첨병” vs “단편적 소통만 있을 뿐”

입력 2011-11-06 18:46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수가 지난달 2000만명을 넘어섰다. 전체 국민의 40%, 경제활동 인구의 80%에 해당하는 규모다. 애플 아이폰이 2009년 11월 국내에 첫선을 보인 지 2년 만이다. 스마트폰은 우리 생활과 문화를 혁신적이고 편리하게 바꿔 놓았다. 스마트폰은 ‘일, 여가, 소통의 종합 플랫폼’으로 불린다. 하지만 단편적인 소통만 난무할 뿐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인간 관계형성을 가로막는다는 지적이 많다. 중독현상과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다.

‘스마트 로봇세대.’ ‘이미지와 터치로 사고하는 세대.’

전문가들은 ‘엄지족’에 이은 스마트폰 세대를 이렇게 불렀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6일 “최근 스마트폰을 단순한 가이드가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의 중심으로 여기는, 스마트폰에 의존해야만 라이프사이클이 움직일 수 있는 ‘스마트 로봇’과 같은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스마트 세상으로 가는 ‘티핑 포인트’=스마트폰은 이미 우리 생활을 여러 측면에서 바꿔놓고 있다. 무엇보다 정보 습득이 엄청나게 편리해졌다.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검색, 애플리케이션(앱)을 활용해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할 때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기존 기기들이 한 가지 주력 기능만을 내세워 쉽게 싫증이 나지만 스마트폰은 활용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황주성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박사는 “기존 미디어인 PC나 텔레비전과 달리 스마트폰이 이용자한테 주는 가장 큰 가치는 시간·공간적 자유”라고 말했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태블릿PC쪽으로 확장되면서 궁극적으로 멀티 플랫폼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전기와 TV 등 새로운 기술이나 기기가 등장하고 사용자가 국민의 절반을 넘어서면 그때를 기점으로 급격하게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양상을 보인다”며 “내년 초면 스마트폰 가입자 비중이 전 국민의 50%를 넘어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스마트 세상으로 넘어가는 기반이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소통을 하고, 표현의 자유를 바탕으로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돼 나오는 것도 스마트폰이 가져온 변화라는 설명이다.

가족, 친구, 연인 등과 사소한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 일상화된 점도 긍정적인 변화로 꼽힌다.

중소 가구업체 임원인 김병철(50)씨는 “요즘 고등학교 2학년인 딸과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주고받는 재미에 푹 빠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딸이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 대화가 많이 줄었었는데 올해 초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서 공통의 관심사가 생겼다”며 “재미있는 앱을 발견하면 서로 알려주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부녀간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라고 말했다.

◇깊은 사고와 인간관계는 없어=그러나 스마트폰으로 인해 단편적인 소통만 있을 뿐 사람들 사이에 깊은 교감과 인간관계 형성은 더 어려워졌다는 지적이 많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박사는 “스마트폰은 감성의 교류가 아닌 콘텐츠의 교류만 있기 때문에 인간적 관계가 피상적으로 흐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인해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지면서 인내심이 줄어들고 직관도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으로 인해 정보의 교류만 있을 뿐 감성의 교류가 잘 안된다는 것이다.

현택수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마트폰이 감각만 자극하고 즉흥적이고 신속한 반응을 하게 한다”면서 “좀 더 생각하고, 진실하게 내밀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소통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0만명을 넘어섰다는 사실은 아직 3000만명이 쓰고 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지난 5월 발간한 ‘국내 IT 이용에서 인구사회적 격차분석’ 보고서를 보면 대학원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들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40.0%로 고졸 이하(17.9%)에 비해 2배 이상 높았다. 월평균소득 500만원 이상 가구의 스마트폰 이용률은 20.7%인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는 9.9%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보고서는 “스마트폰은 사용 여부뿐 아니라 다양한 앱 활용, SNS 이용과 맞물려 훨씬 더 복잡한 격차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태명 성균관대 정보통신공학부 교수는 “디지털 디바이스(정보기기) 때문에 소외되는 계층, 격차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그런 문제들도 동반성장하는 세상에서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스마트폰 중독 현상을 토로하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실제 한 포털업체가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전국 대학생 18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8.3%가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답했다. 스스로 중독됐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37.3%에 달했다. 대학생 김윤서(23)씨는 “얼마 전 소개팅을 했는데 상대방이 내내 스마트폰으로 뭘 보고 쓰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며 “상당히 불쾌했지만 곧 평소 내 모습이 저러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 아차 싶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현상의 거품을 지적하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원재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는 “스마트폰 가입자가 2000만명을 넘었다고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에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거나 데이터 이용환경이 급속히 좋아진 건 아니다”라면서 “단순히 2000만이라는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건 나이브한(천진한) 기술결정론”이라고 지적했다.

권지혜 김수현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