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시골장 옥천 5일장… 詩 ‘향수’에 젖어 장터, 문화공간이 되다
입력 2011-11-06 18:44
“‘향수’를 쓴 정지용 시인이 돌아온 것 같아 너무 기뻤어요.”
정지용(鄭芝溶·1902∼1950) 시인을 소재로 한 ‘시(詩)가 있는 향수 오일장’ 공연이 지난 5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충북 옥천읍 공설시장에서 열렸다. 이날 옥천 5일장에 나온 300여명은 비록 하루지만 정 시인의 대표시 ‘향수’에 젖은 듯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시장 상인들도 모처럼 웃음꽃을 피웠다.
공설시장에서 장사하는 강종호(62)씨는 “대형마트가 들어서고 대전 등지에서 쇼핑하는 사람들이 많아 시장에서 장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며 “앞으로 장날마다 이렇게 테마가 있는 행사를 갖는다면 옛 시장의 모습을 찾지 않겠느냐”고 즐거워했다.
‘청년 정지용’을 테마로 옛날 장터 분위기를 재연한 이날 문화공연은 1930년대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1919년 서울 휘문고보(현 휘문고)에 다니던 정 시인이 고향인 옥천역에 도착하는 장면에서 시작됐다. 정 시인과 함께 인력거, 마차, 기마경찰, 사진사 등이 등장하면서 시장은 마치 80여년의 시간을 거꾸로 돌려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정 시인의 일본 도시샤대(同志社大) 재학시절(1923∼29년)로 시간이 설정된 장터 안 특설무대에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다문화여성 등이 패션쇼를 열었다. 또 일본에서 발표된 그의 작품 ‘압천(鴨川)’이 시극으로 펼쳐져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또 20인조 오케스트라가 일제 강점기 민족의 한을 담은 노래 ‘울 밑에 선 봉선화’를 연주하는 가운데 후배 문인들이 정 시인의 ‘향수’ 등을 낭송하면서 장터는 시가 흐르는 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다.
안내면에서 왔다는 최말숙(75·여)씨는 “옛날 옷을 입고 장터를 다니는 모습을 보니 옛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 말했다.
송주철 옥천 장터활성화 사업단장은 “시낭송회 등 이날 문화공연을 위해 2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비가 와 많은 사람들이 오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시(詩)가 있는 향수 오일장은 이달 말엔 정 시인의 29세 이후 삶을 조명하는 공연을, 연말에는 ‘나비’ 등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마지막 공연을 잇달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공설시장 상인회 모임인 ‘5학년 10반’(5일장, 10일장을 의미)은 정 시인의 시에 나오는 단어로 상호를 만들어 주는 등 전통시장 살리기에 앞장설 계획이다. 이번 공연은 옥천 장터활성화사업단이 전통시장 살리기 프로젝트인 문전성시 사업을 펼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열렸다.
옥천=글·사진 이종구 기자 jg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