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능 도로에 종일 노출됐는데…정부선 걱정말라니”… ‘아스팔트 방사능’ 서울 월계동 현장 르포

입력 2011-11-07 00:20

과일가게와 정육점 등 작은 가게가 빼곡히 들어서 있는 월계동 276번지 시장골목에는 6일 물건을 사러 온 손님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3일 이곳에서 기준치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돼 5일부터 도로 교체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시장 입구에서 안쪽으로 뻗어 있는 골목 앞에는 ‘공사 중 진입금지’라는 표지판이 서 있었다. 길이 220m의 도로는 파헤쳐져 있었다. 굴착기 굉음에 행인들은 귀를 막고 지나갔다. 빵집 점원은 “가게 앞 도로가 이렇게 엉망이니 손님이 오다가도 발길을 돌린다”면서 “공사가 끝난 뒤에는 방사능 이미지 때문에 손님이 끊길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년간 방사능에 노출된 사실을 알게 되면서 건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30년째 이곳에서 세탁소를 운영해 온 장길수(72)씨는 “대장암에 걸려 치료 중인데 방사능에 노출된 것 때문이 아닌지 의심된다”면서 “방사능이 질병의 원인이라면 정부가 보상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과 상인 80명으로 구성된 ‘노원구 방사능 검출 비상대책위원회’(가칭)는 지난 4일 100여명 주민들을 상대로 질병 조사를 실시, 그 결과를 구청에 제출했다. 비대위의 육도군 총무는 “우리 동네에 유독 암에 걸린 사람이 많고, 피부질환으로 고생하는 사람이 많아 주민들을 상대로 질병 현황을 파악했다”면서 “정부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건강검진을 실시하고, 방사능과 질병이 상관있다는 결과가 나올 경우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보다 앞서 지난 1일 대기 평균 수치의 10배나 많은 방사능이 아스팔트 도로에서 검출된 월계동 907번지 일대도 도로 공사로 어수선했다. 이곳은 지난 4일부터 도로 교체 공사가 시작돼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H아파트 입구부터 100m 정도 뻗은 도로를 덮고 있던 아스팔트는 걷힌 상태였다. 인부 3명은 새 아스팔트를 깔기 위해 울퉁불퉁한 도로를 평평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주민들은 문밖으로 나와 공사 현장을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봤다. 한 주민은 “방사능에 노출된 게 자꾸 알려져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서 10년을 살았다는 이모(36·여)씨는 “집 앞 도로에서 서울시 평균치의 25배에 달하는 방사능이 검출됐는데도 정부는 염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하니까 혼란스럽다”면서 “항상 차가 다니는 도로이기 때문에 먼지가 날리고 바로 옆에 주택가와 상가가 있어 우리들은 사실상 24시간 방사능에 노출된 상태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나 정부 관계자는 “도로에 붙어서 24시간 생활하는 사람은 없다”면서 “이 지역에서 검출된 방사능 수치는 인체에 유해할 정도는 아니다”고 말했다.

방사능이 검출된 월계동 도로는 2000년 아스콘을 재료로 시공됐다. 환경단체는 2000년 이후부터 아스팔트 도로에 사용된 아스콘이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월계동 도로와 같이 2000년 이후에 아스콘을 사용해 포장된 도로는 서울시에만 2500곳에 달한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