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도 ‘보험사기’ 질문… 이사가고 싶어”… ‘보험금에 눈먼 도시’ 오명

입력 2011-11-06 18:20

“병원, 보험 이런 말 아예 꺼내지도 마세요.”

6일 오후 2시에 찾은 강원도 태백시. 병원 관계자와 전·현직 보험설계사, 주민 등 무려 410명이 보험사기에 연루된 태백지역 주민들은 보험사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입에 올리는 것 자체를 꺼렸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보험사기 경찰수사 결과가 중간발표에 불과하고, 연말까지 최대 200여명이 추가 입건될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자 주민들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뒤숭숭한 속내를 털어놨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최모(34·여·태백시 황지동)씨는 “아이들이 신문과 방송을 보고 ‘우리 동네에서 전국 최대 범죄가 벌어졌다고 하는데 맞느냐’고 물어 너무 난감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들 학교에서도 이런 이야기들이 회자될 만큼 얘기가 너무 퍼진 데다 아직 끝이 아니라고 하니 이사라도 가고 싶은 생각”이라고 답답해했다.

일부에서는 “쉬쉬했던 일이 결국 터진 것”이라는 반응도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모 손해사정법인 관계자 김모(33·원주시)씨는 “경찰 얘기가 딱 맞다. 태백에서는 ‘보험 들고 입원 안 하면 바보’라는 말이 업계에 널리 알려져 있을 정도로 ‘차트환자’ 같은 가짜 환자가 많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상당수 주민은 공공연히 이뤄지는 보험사기를 하필 태백지역만 표적 삼아 수사했는지 불쾌해했다. 서울이나 대도시 지역은 치밀하고 지능적 보험범죄가 성행하는데, 왜 하필 침체돼 가는 시골지역 주민들을 적발했냐는 것이다.

탄광에서 근무하다 은퇴했다는 한 주민은 “예전부터 탄광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막장 안에서 다치는 일이 많아 보험을 많이 들어뒀고 보험금을 받았던 것이 학습이 돼 이런 일이 생긴 것 같다”며 “40개에 이르던 탄광 대부분이 문 닫아 워낙 먹고살 게 없는 동네인데 불법이기는 하지만, 주민 수백명씩 잡아가는 경찰이 야속하기도 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 이번 보험사기로 경찰에 입건된 태백주민 5분의 4는 직업이 없거나 일용직 노동으로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이다.

특히 폐광지역인 태백의 회생을 위해 대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는 태백시지역현안대책위원회는 이번 사건으로 태백지역에 대한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이 악화돼 투쟁에 부정적 영향이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대책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문근 태백시의장은 “많은 대책위 사람들이 단식을 하고, 상경 투쟁을 해왔는데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 나쁘게 바뀌어 이런 노력이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걱정했다.

태백=박성은 기자 silv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