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제도 시민참여 어디까지 왔나] 검사가 개최여부 결정·구속력 없는 의결권 한계
입력 2011-11-06 20:52
김모씨는 지난 9월 집에서 두 차례 흉기로 아들을 위협했다. 알코올 중독자인 김씨로부터 줄곧 가정 폭력에 시달려온 가족들은 참다못해 경찰에 신고했고, 김씨는 구속됐다. 이후 김씨의 어머니와 아들이 입원치료를 시키겠다며 선처를 호소하자 담당 검사는 치료의 필요성을 등을 인정해 구속취소 의견을 정한 후 검찰시민위원회 의견을 구했다.
검찰시민위원들은 검사의 사건설명서에 기재된 사항 외에 김씨의 알코올 중독 판정 및 흉기 소지 경위, 가족들의 입원치료를 위한 경제력 능력 등을 집중 심의했다. 심의 결과 시민위원회는 대낮에 흉기를 사용한 점, 입원치료 약속을 강제할 방법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해 전원 일치로 김씨에 대한 구속 유지를 의결했고 김씨는 구속이 유지됐다.
지난해 8월 제도 도입 당시 구속력 등을 이유로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던 시민위원회가 1년여를 보내면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검찰은 그간 일선 지검·지청에서의 운영 상황을 점검해 보완책을 마련한 후 제도를 확대·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기소 여부 시민의 손으로=한국의 검찰은 형사소송법상 국가소추주의와 기소편의주의에 따라 광범위한 기소권을 독점해 왔다. 기소권을 견제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항고와 재정신청이 있지만 이는 검사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사후적 대응 성격을 갖는다. 이에 검찰은 지난해 8월 미국식 대배심(Grand Jury) 제도와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참고해 검찰시민위원회를 출범시켜 629명의 1기 검찰시민위원을 선정했다.
지난해 8월 제도 실시 이후 올해 8월 말까지 개최한 시민위원회는 모두 172회로 337건을 심의했다. 심의 대상 범죄 유형으로 폭력범죄가 121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재산범죄(56건), 살인·치사(24건), 뇌물 등 부패범죄(22건) 순이었고 기타가 113건이었다. 심의 대상 유형으로는 불기소 적정성(114건)에 대한 건수가 가장 많았고 구속영장 재청구 적정성(112건), 기소 적정성(88건), 구속취소 적정성(23건)이 그 뒤를 이었다.
올해 1월 서울동부지검에서 ‘함바비리’ 의혹을 받은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 적정 의결을 한 데 이어 9월에는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시도상선 권혁 회장에 대한 영장 재청구 여부를 심의해 재청구가 적정하다고 의결했다. 시민들의 관심도가 높은 사건을 잇따라 심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병역 기피 목적으로 고의 발치한 의혹을 받고 있는 연예인 MC몽에 대해 기소 적정 의결을 했고, 올해 9월에는 고(故) 장자연씨 편지를 위조해 법원에 증거로 제출한 전모씨 사건에 대해서도 기소 적정 의견을 냈다. 같은 해 7월 창원지검에서는 승부조작 가담 선수 8명에 대한 기소가 적정하다고 의결했다.
이 기간 시민위원회 심의 의결 내용과 검사의 의견이 충돌했던 사건도 22건에 달했지만 시민위원회 의견이 모두 받아들여졌다. 학생회 간부들이 신입생환영회에서 술을 강요하는 바람에 신입생이 사망한 청주지검 사건에 대해 시민위원회는 검사 의견과 달리 기소 부적정 의결 후 일부에 대해 기소 유예처분을 내렸다. 시민위원회의 의결 사항에 구속력을 부여하지 못해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았던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 시민위원회의 심의과정에 참여한 검사들로부터 “결재하는 부장이 할 수 있을 법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반응이 나오는 등 시민위원들의 심의 내용 역시 깊이를 더하고 있다는 평이다. 지난달 말까지 모두 229회를 개최해 436건을 심의, 제도 시행 1년을 넘기면서 시민위원회 개최 건수도 증가 추세에 있다.
◇시민 참여 입법화되나=검찰 개혁 방안으로 제시된 후 시행 1년을 넘긴 시민위원회는 그간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문제점도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대표적인 게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견제한다는 차원에서 도입된 시민위원회가 겨우 체면만 유지하는 수준에서 운영된다는 것이다. 지난달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김학재 의원은 8월 말까지 통계에서 재경지검 시민위원회 개최 건수가 평균 5.4회에 그친다고 밝혔다. 검사가 시민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상황에서 업무분담이 많거나 시급한 사건의 경우 위원회가 열리기 힘들다.
사회적 관심을 받는 민감한 사건의 경우 검찰이 시민위원회를 내세워 판단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검찰이 사건 설명서를 쓰고 시민위원회의 질의에 응답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검찰 의견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에 따라 검사의 설명과 동시에 서면으로라도 피의자의 해명권이 주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시민위원회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에 대한 입법화 논의도 검토 중이다. 김 의원이 대검찰청 예규로 돼 있는 시민위원회 운영지침을 법률화하는 ‘검찰시민위원회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을 대표 발의해 논의 중이다. 자유선진당 김창수 의원도 일본의 검찰심사회를 참고한 ‘검찰심사시민위원회 법안’을 제안해 검토 중이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검찰 소위는 지난 6월 두 안을 검토했으나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 중 현행 제도에 기반한 김 의원의 법률안은 대검예규와 달리 심의 대상에 ‘수사착수 및 수사과정의 적정성’과 ‘구속영장 청구의 적정성’을 추가했고, 위원 임기도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렸다. 또 심의 요청 사항에 ‘검사 비위사건’을 추가하는 등 권한과 기능을 일부 강화했다. 검사가 시민위원회 개최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현행 방식과 달리 3인 이상의 위원이 심의를 요청한 때는 검사가 시민위원회에 반드시 회부해 심의해야 한다.
다만 의결 사항은 여전히 구속력을 갖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이나 대한변호사협회는 시민위원회가 실효적인 통제수단이 될 수 없다며 법률안에 반대하고 있다. 민변은 법률안에 대한 검토 의견에서 “불기소 처분에 대한 효과적인 수단인 재정신청을 확대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민변은 법률안대로 시민위원회가 도입될 경우 검찰이 재정신청제도 개선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변명사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