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설움 딛고 우뚝 선 ‘게이트플라워즈’… 종영 오디션 프로 ‘톱밴드’로 인기

입력 2011-11-06 18:05


4인조 록밴드 게이트플라워즈는 무명이었다. 지난해 발매한 첫 미니음반은 400장도 안 팔렸다. 콘서트를 해도 공연장은 휑했다. 올해 초 열린 제8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록’ ‘올해의 신인’ 2관왕을 차지했지만 사정은 마찬가지. 달라지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KBS 2TV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에 출연하면서 밴드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대중들은 박근홍(34·보컬) 양종은(31·드럼) 염승식(30·기타) 유재인(30·베이스) 4명이 만드는 앙상블에 탄복했다. 팬 커뮤니티 회원 수는 10배 이상 늘었고, 음반 재고는 동이 났다. 오는 26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여는 콘서트 역시 티켓 오픈 한 시간 만에 매진됐다.

최근 서울 창전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게이트플라워즈를 만났다. 다들 갑작스러운 인기에 다소 얼떨떨해하는 모습이었다. 염승식은 “지금의 이 분위기가 뭔지 모르겠다”며 웃었다. “6개월 전만 해도 공연하면 20명 정도 왔거든요. 그 중 절반은 지인이었고요(웃음). 이젠 팬들이 티켓 오픈 시간을 기다렸다가 서로 ‘클릭’해서 오려고 하니 실감이 안 나죠.”(염승식)

밴드 실력을 격찬하는 말들이 많다고 하자 “창피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유재인은 “우린 정말 약점이 많다. 서로 궁합이 잘 맞아 사람들이 약점을 잘 못 볼 뿐이다”고 설명했다.

사실 ‘톱밴드’ 방송 초기만 해도 게이트플라워즈의 출연은 논란이 됐다. 참가자 대부분이 직장인이나 학생들로 구성된 아마추어인데 반해 이들은 검증이 끝난 ‘프로 밴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격 시비’는 방송 초기인 지난 6월, 팀의 맏형인 박근홍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 하나로 일단락됐다. “우리가 음악을 바꾸지 않고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당장은 이게(방송 출연) 유일하다”는 ‘출연의 변(辯)’은 국내 밴드들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짐작케 만들었다. “2011년 현재 게이트플라워즈는 올여름 국내 유수의 페스티벌 중 단 한곳에도 나가지 못합니다…공연에 겨우 20명 모으는 밴드를 어떤 페스티벌에서 초청하려 하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밴드 음악을 할 때 부딪히는 가장 큰 벽은 무엇일까. 염승식은 이렇게 설명했다. “거창한 인기가 필요한 게 아니에요. 공연 열 때 50명 정도만 계속 와도 밴드는 오래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정도도 안 되면, 그런 상황이 수 년 동안 계속되면 누구나 지칠 수밖에 없죠. 금전적인 문제는 둘째예요. 돈이야 따로 일해서 벌면 되니까.”

오는 26일 공연이 한 시간 만에 매진된 만큼 이들은 다음 달 3일 서울 서교동 홍대 브이홀에서 추가 공연을 열기로 했다. 내년 초에는 정규 1집 음반을 발매한다. 박근홍은 “다른 사람들 눈치 보지 않고 순수하게 음악에만 전념하는 밴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