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 차등제’ 자기 함정에 빠지다… 시행 한달 주·부상병 바꾸기 등 부작용 속출
입력 2011-11-06 18:03
서울의 모 대학병원 교수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2형 당뇨병으로 갑상선질환을 함께 앓고 있는 한 환자가 찾아와 ‘당뇨병을 부상병으로 바꿔 달라’며 편법 처방을 요구한 것. 지난달 1일부터 시행 중인 ‘약국 본인부담률 차등 적용제’로 인해 갑자기 당뇨 약값이 오르자 환자가 어디선가 ‘두 질병으로 약을 처방받을 때 당뇨병을 주상병(기본 질병)이 아닌 부상병(부가 질병)으로 하면 당뇨 약값을 더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듣고 이 같이 요청한 것이다. 교수는 그럴 수 없다며 환자를 돌려보냈다.
당뇨병이 52개 경증질환 중 하나로 분류돼 종합병원급 이상에서 진료 받으면 환자의 약값 부담이 커지는 제도가 시행 한 달을 넘기면서 당초 우려했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제도는 당뇨병(혼수·산증 동반, 인슐린 투여환자 제외)으로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할 경우 환자 본인 부담 약값을 기존 30%에서 50%로, 종합병원을 이용하면 30%에서 40%로 늘린 것이다. 동네 병·의원은 종전처럼 30%만 내면 된다.
6일 의료계에 따르면 일부 환자들이 요구하는 ‘주·부상병 바꾸기’는 주로 가정의학과처럼 여러 질병을 한 의사가 보거나 당뇨 환자가 갑상선질환까지 앓고 있어 내분비내과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경우 가능하다. 하지만 단지 약값을 덜 내기 위해 주·부상병을 바꾸는 것은 안 된다는 게 보건복지부 입장이다.
약값을 줄이려 동네 병·의원을 찾아도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대학병원으로 가야 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합병증을 앓고 있는 당뇨 환자의 경우 보통 10개 안팎의 약을 처방받게 되는데 동네의원에서 이런 환자를 진료할 경우 ‘건당 진료비’가 늘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다시 대학병원으로 환자를 돌려보내기 때문이다. 지방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이런 식으로 동네의원에 갔다 다시 돌아온 환자가 제도 시행 후 4명이나 된다”고 전했다.
합병증 관리가 중요한 당뇨가 감기 등과 동일하게 취급된 데 대한 환자들의 불만과 반발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말까지 복지부 콜센터에는 당뇨 환자들의 민원 670여건이 접수됐다. 또 한국당뇨협회는 지난달 27일 국가권익위원회와 인권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등에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협회는 “당뇨 환자 중에는 합병증 관리와 치료를 위해 상급 의료기관을 갈 수밖에 없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에게까지 약값 부담을 높이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복지부는 민원이 잇따르자 최소 3개월간 모니터링해 본 뒤 당뇨병학회 등과 제도 보완을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합병증 동반 환자의 경우 제도 적용 예외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관련 학회 등이 제도 시행 전부터 이 같은 우려를 여러 차례 제기했던 터라 복지부가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정책을 밀어붙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