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홍순영] 풀과 농부에게 배운다
입력 2011-11-06 17:53
“태초에 풀이 있었다.” 믿기지 않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풀은 지구가 식으면서부터 빛이 없는 고산의 눈 속과 동굴, 깊은 바닷속에서도 자라 왔고, 바위틈에서도 싹을 틔우며 자라 왔다. 적어도 지구 생명체의 역사는 풀과 함께해 온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중소기업이 지구촌의 곳곳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것과 같다. 기업의 기원은 원시인류의 생산활동 시작과 함께한다. 요즘의 경제용어로는 1인 창조기업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산업의 역사는 중소기업과 함께해 온 역사라 할 수 있다.
풀은 끈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풀은 지구의 온 산천을 덮고 있는 만큼이나 종류가 다양하고 성질도 각기 다른 식물의 근원이다. 이는 마치 중소기업의 존립형태가 이질 다원적이며, 도전과 경쟁의 상징이고, 산업과 경제의 기반인 것과 같다.
풀은 지구를 거의 덮으면서 사람을 비롯한 무수한 동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뿌리를 통해 땅 밑의 미생물에게까지도 생존의 터전을 마련해 줌으로써 지구 생명체계의 선순환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는 중소기업이 각국에서 사업체와 고용의 거의 대부분(우리나라의 경우 각각 99.9%와 88%)을 차지하면서 기업 생태계에 역동성을 불어넣고, 빈곤의 완화를 통해 국민경제의 선순환과 안정에 기여하고 있는 것과 같다.
풀은 인류의 정착을 돕고 풍요로움을 이루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식물이기도 하다. 70억 인구의 주식이 되고 있는 벼와 밀이 그것이다. 이들은 고구마, 감자, 인삼, 마늘 및 목화 등 수없이 많은 풀들과 함께 인류의 의식주를 해결해 주며, 약재도 제공해 주는 등 한없는 이로움을 주고 있다. 이는 마치 중소기업이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의식주는 물론 생활 전반을 책임지며 우리에게 재화와 용역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는 것과 같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같은 풀이라도 가꾸기에 따라서 사람에게 주는 기여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벼, 밀, 인삼, 목화 등도 인류가 경작하고 가꾸기 전에는 보통의 들풀에 불과했을 것이다. 농부가 잘 자랄 수 있게 땅을 갈아주고, 물도 대주고, 품종도 개량하고, 비료도 주었기에 오늘날 인류에게 더 큰 이로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중소기업도 정부, 금융기관, 대기업, 소비자 등 경제주체들이 어떻게 잘 성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느냐에 따라, 다시 말해 얼마나 잘 가꾸느냐에 따라 더 많은 고용을 창출하게 하고 지속적인 성장을 이끌도록 할 수 있다.
지난주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분이 한 세미나의 인사말을 통해 “향후 성장률 대신 고용률을 경제정책 중심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하였다. 옳은 방향이다. 필자는 지난해 고용노동부 출범 때 고용 확대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고용노동부를 부총리급의 경제부처로 격상시켜 고용창출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부처들에 어떠한 요청도 할 수 있고, 다른 부처는 어떠한 협력도 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또한 그 길을 고용창출을 많이 하는 고성장형 중소기업의 저변 확대와 성장 촉진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들이 원자재가격 및 환율의 급등락, 자금조달 애로 등으로 금융위기 때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용감소와 경기침체가 우려된다 하겠다.
정부는 보릿고개를 없앤 농부들의 풀 가꾸기에서 중소기업 키우기와 고용복지 정책의 지혜를 얻어야 할 것 같다.
홍순영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