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남중] 총리가 쓰는 편지

입력 2011-11-06 17:53

매주 기다려지는 글이 있다. 처음엔 좀 밋밋하다 싶었는데 요즘엔 안 보면 섭섭하다. 국무총리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매주 한 차례 올라오는 ‘총리가 쓰는 편지’ 얘기다.

지난 주 편지 제목은 ‘울적한 마음을 달래준 사진 한 장’이었다. 스무 살 해병대원이 면회 온 어머니를 등에 업은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본인이 어렸을 때 어머니 등에 업혔던 순간을 추억하는 내용이다.

“두세 살 적 어머니 등에 업혀 얕은 강을 건넜던 순간입니다. 고운 강모래와 햇살에 빛나는 맑은 강물! 그 순간 강바닥 모래의 촉감이 제 발바닥에 그대로 전해온 것으로 지금까지 기억되는 것은 어찌된 연유일까요. 어머니와 저는 일체였으니 어머니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된 것은 아닐런지요.”

언론을 통해 중계되는 총리의 말이란 대개가 공적인 언사라서 표정이나 감정이 삭제돼 있다. 총리가 쓰는 편지는 공적인 말들 너머에 있는 총리의 사적인 말들을 전해준다. 그리고 사적인 말들을 통해 총리는 ‘자리’가 아니라 ‘인간’으로 다가온다.

김황식 총리의 편지쓰기는 지난 3월말에 시작됐다. 김 총리는 매주 일요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이 편지를 쓴다고 한다. 바쁜 일정 속에서도 편지 쓰기를 빼먹지 않는 건 즐겁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총리의 편지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사회 어른으로서의 모습이다. 국정 운영의 책임자로 국민들에게 얘기한다기보다 국가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한 어른으로서 젊은 세대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총리는 노벨상의 계절을 보내며 우리의 독서문화를 돌아보자고 말하고, 광복절에는 반일감정보다 국력을 키워가는 데 관심을 갖자고 권유한다. ‘어느 미군 참전용사의 코멘트’라는 글은 2007년 미국 워싱턴DC 한국전참전기념공원을 방문했던 소감을 전하며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기억해야 할 얘기를 들려준다.

“18세 때 참전한 한 병사의 ‘그땐 명령 때문에 싸웠지만 (한국이 이렇게 발전했으니) 내 젊음은 충분히 보상받은 셈’이라는 코멘트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총리의 편지에서 장애인이나 비정규직, 외국인노동자, 고졸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발견되는 것도 특징이다. 김 총리를 두고 실세니 아니니 논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김 총리는 권력과는 상관없는 다른 차원을 바라보는 것 같다. 국가의 어른, 사회의 원로로서의 총리, 그런 차원이 아닐까 싶다.

김남중 차장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