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회심-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나를 품으신 뜻처럼 굶주린 생명을 품습니다

입력 2011-11-06 16:31


나는 충청도 논산의 한 시골마을, 가난한 농가의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들과 터울이 많이 지는 탓에 사랑도 많이 받았지만 가난과 굶주림은 언제나 나와 우리가족을 맴돌았다. 어쩌면 지금 지구촌 굶주린 이웃들을 섬기게 된 터가 그때부터 생기게 된 것은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고부터 일어났다.

예수님을 만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짝이던 김종구 전 법무부 장관은 주일마다 성경책, 찬송가에 내 연보까지 챙겨 교회로 인도하려고 했다. 대학교 1학년 때는 포항에 살던 이태우 학형으로부터 크리스천이 되도록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처음 하나님 말씀을 접하게 된 것은 대학 4학년이던 1962년이었다.

그해 어느 날 친구들을 따라 한국대학생선교회(CCC) 모임을 가게 됐다. 처음엔 웃어 넘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하게 나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고 김준곤 목사님의 말씀을 들으며 서서히 예수님을 알게 됐고, 주님을 영접하게 됐고,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삶에 대한 결단은 CCC모임에 나간 지 3개월 만에 이뤄졌다. CCC 성탄축하 모임에서 ‘CCC나 예수님이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는가’를 놓고 얘기를 나눴다. 나는 “그리스도를 선전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했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선전’이 아니라 ‘전도’라고 말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도 나를 보면 “예수 선전하는 사람 오는 군”이라며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사도행전 10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이 있다. 나는 9남매 막내로 태어났다. 큰형님은 8남매, 둘째형님은 9남매를 두셨고 다른 형제들도 3남매 이상 두셨다. 부모님 밑으로는 200여 명이 넘는 친지들이 있다. 사촌 누님이 믿고, 내가 믿으면서 이들 중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약속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신뢰하며 찬양을 드린다.

하나님은 내 첫 직장이자 23년간 근무했던 전경련에서 믿음의 동역자들과 성경연구반을 통해 함께 공부하게 하셨다. 또 고 정주영 회장과 최태섭 회장의 뜻을 이어 경제인 조찬기도회를 조직했다. 하나님은 80년대 초부터 주요 그룹의 회장이나 사장들, 군 장성들, 대학교수나 언론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주축으로 한 한국성서연구회를 세우시고 많은 헌신자들을 부르시는 통로로 사용하셨다.

부자에게서 배우고 빈곤한 이웃 섬겨

전경련 전무이사직에서 89년 은퇴한 나는 일본선교사가 되기를 계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멘토인 당시 새순교회 윤남중 목사님이 한국국제기아대책기구를 함께 세워보자고 권유하셨다. 윤 목사님과 기아대책 초대회장이신 ㈜한국유리의 고 최태섭 회장님의 권유에 용기를 얻어 기아대책을 설립하는 데 힘을 쓰게 됐다.

돌아보면 23년간 전경련에서 한국 최고의 부자들을 섬기며 일했는데 이후 22년 동안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을 섬기고 있다. 전경련에서 재벌들을 통해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10원 하나 가치 없는 곳에는 돈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고 있는 소중한 생명들을 살리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이 내 인생에 큰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기아대책과 함께한 22년

풀무원 원경선 원장님, 지금껏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최태섭 한국유리 회장님과 윤남중 목사님 등의 도움으로 기아대책을 세웠지만 초창기에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주변의 반대와 만류도 많았다. ‘우리나라는 아직 다른 나라를 도울 만큼 부유하지 못하다’는 이유가 제일 컸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도 미국이나 유럽에 가보면 노숙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데 반세기 전에는 더 어렵지 않았겠느냐. 하지만 그들이 먼저 우리를 돕지 않았으면 우리가 어떻게 그 어려움을 이기고 오늘에 이를 수 있었겠느냐. 우리는 모두 사랑에 빚지고 생명에 빚진 자들이다. 우리도 어렵더라도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그 빚을 갚을 때다.”

이런 설득을 통해 작은 무역회사 사무실에 책상과 전화 하나씩 놓고 시작하게 됐다. 22년이 지난 지금, 기아대책은 전 세계 5500명이 넘는 이웃의 가족이 됐다. 첫해에는 1억8000만원을 모금해 에티오피아, 방글라데시 등 7개 나라에 15만 달러를 보냈다. 지금은 후원금 1억 달러를 갖고 81개국으로 섬김의 장을 넓히게 됐다.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나는 예수 믿는 친구들을 핍박(?)하던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 믿는 친구들을 놀리거나 별종 취급을 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아. 그들은 정직한 사람들이야. 착한 사람들이야. 그들은 말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야.’

언제부턴가 그리스도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교회에 다닌다는 이유로 핍박받거나 이상하다는 시선은 받지 않게 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을 보면서 거짓말쟁이들,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입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렇다보니 예수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돼 버렸다. 그렇다면 이렇게 손놓고 있어야 할까? 곱지 못한 시선에 숨죽이고 있어야 할까? 나는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섬김을 통해 정직과 진실과 사랑을 보여줘야 한다. 하나님을 알되 그 뜻대로 사는 의인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달라진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김준곤 목사님, 윤남중 목사님, 최태섭 회장님…. 내가 이런 분들을 만나지 못했다면 내 모습도 많이 달랐을 것이다. 지금 81개국에서 1270여명의 기아봉사단이 사역을 하고 있지만 나는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해외에 나가기를 꿈꾸고 있다. 가난하고 굶주린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고 키우는 방법을 전하려면 사람이 필요하다.

2030년까지 기아대책이 10만명의 선교사를 보내고 100만명의 후원자를 모으며 1000만명의 기도후원자가 연결되도록 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기적 같은 변화를 믿으며 오늘 하루를 전진해 가려고 한다.

정정섭 회장

1941년 4월 충남 논산 출생. 대전고, 고려대를 졸업하고 66년부터 23년 동안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근무했다. 89년 설립 때부터 22년 동안 기아대책을 섬기고 있다. 2005년 이후 기아대책 회장직을 맡고 있다. 해외원조단체협의회 부회장,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 통일부 통일고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겨자씨 운동’ ‘복떡방 이야기’ 등을 저술했다.

정리=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