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라피노 美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별세…한반도 등 아시아의 미래 꿰뚫은 석학

입력 2011-11-05 01:06

한반도를 비롯해 아시아 연구의 석학으로 꼽히는 로버트 스칼라피노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명예교수가 지난 1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19년 미국 캔자스주 리븐워스에서 태어난 스칼라피노 교수는 샌타바버라대를 졸업하고 1948년 하버드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잠시 모교에서 강의한 것을 빼고는 다음 해부터 UC버클리에 재직하며 반세기 넘게 교수로 활동했다.

그는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아시아를 연구하기 시작한 1세대 학자에 속한다. 특히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등 아시아의 정치·사회 변화에 큰 관심을 갖고 최근까지 활발한 연구를 계속해왔다. 1978년 UC버클리 동아시아 연구소를 세워 1990년 소장을 맡았다. ‘한국 공산주의운동사’ ‘김일성’ ‘현대 일본정당과 정치’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 ‘미국과 아시아’ 등 39권의 저서를 펴냈다. 북한도 6차례 방문했고,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3차례 연구교수로 재직했다.

하버드대 교수 시절 미국과 유럽에 관심을 갖던 그가 아시아 쪽으로 눈을 돌린 계기는 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 이후 그는 아시아로 연구 분야를 바꿨다. 1943년부터 3년간 해군장교로 복무하며 일본어를 익혔다. 이 같은 내용은 지난해 출간한 ‘신동방견문록-리븐워스에서 라싸까지’에서 소상하게 소개돼 있다. 그는 “아시아는 내 인생”이라고 했다.

또 스칼라피노 교수와 한국의 인연은 각별했다. 그가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건 대학원 제자였던 이정식(80) 미 펜실베이니아대 명예교수 겸 경희대 석좌교수의 권유였다고 직접 밝힌 적이 있다. 지난해 6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신동방견문록’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첫인상은 단순하고 전통적인 정치관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었다고 회고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과 독재정치는 장차 일어날 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이었다고 분석했다.

또 1973년 일본에 망명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처음 만났으며 이후 수감된 김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자 이희호 여사를 찾아간 일도 소개했다. 한반도 통일 전망에 대해서는 “북한의 붕괴나 전쟁이 발발하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은 당분간 불가능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