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미FTA 대치] 與 ‘야당 힘빼기’ 여론전 선회
입력 2011-11-04 01:34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려던 한나라당이 3일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야당 지도자들과 대화를 추진하는 한편 대국민 직접설득 작업을 병행해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황우여 원내대표는 비준동의안 처리를 위해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직접 만나겠다고 밝혔다. 황 원내대표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및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도 만날 생각이다. 노무현 정권 때 한·미 FTA가 체결됐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해 보인다.
황 원내대표는 “야당이 도저히 안 될 것을 다시 제안한다면 우리는 국민한테 호소할 수밖에 없다”고 단호한 입장도 보였다.
오후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는 대다수 의원들이 “비준동의안을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처리 시점은 논의되지 않았다.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처리 이후 물리력에 의한 의사 진행에는 동참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김세연 의원 등 ‘국회바로세우기 모임’ 소속 의원 22명 중 8인은 의총장에서 “물리력이 동원된 의사 진행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결의에는 변함이 없고 끝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권은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해 오전부터 긴박하게 움직였다. 오전 8시 국회 귀빈식당에선 민주당,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창조한국당 대표와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대표가 만났다. 민주당 손 대표는 “한·미 FTA를 어떻게 저지할지 진지한 토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비공개 회의에서 참여당 유시민 대표는 “내년 총선에서 한·미 FTA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등 야당 의원들이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회의실을 점거한 채 농성을 벌여 외통위 회의는 열리지 못했다. 남경필 외통위원장은 “회의를 안 열면 분명히 점거를 푼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소리쳤고 민노당 이정희 대표는 “점거를 푼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오후 들어 야당 관계자 수가 줄자 남 위원장이 국회 사무처에 요청, 외통위 회의실 출입문의 자물쇠를 바꾸면서 야당 의원들의 회의실 점거 상황이 종료됐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국회 본회의가 무산되자 한나라당에 적잖은 불만을 내비쳤다. 이명박 대통령의 유럽 순방기간에 비준동의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 좌절된 책임을 여당 지도부에 돌리는 분위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한마디로 철학 부재에, 전략 부재”라면서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의 반대가 충분히 예고된 상황에서 여당 원내 지도부의 협상력이 부족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용택 김원철 기자 ny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