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프로야구 삼성천하 이끈 오승환 “마무리는 내 운명”
입력 2011-11-03 22:09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를 올 시즌 정규리그·한국시리즈 통합챔피언으로 이끈 ‘끝판대장’ 오승환(29)은 취미가 없다. 오직 야구만 알고, 야구만 즐기는 남자다.
3일 오후 삼성의 홈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만난 오승환은 이날도 훈련에 열중했다. 다음주부터 시작되는 아시아시리즈 때문이다. 오승환에게 ‘경기가 끝나면 허탈감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전혀 없다. 마무리를 짓는 그 순간이 너무 좋다. 허탈감보다는 좋은 순간이 더 많다”고 말했다. 미혼인 오승환은 “시합 끝난 뒤 밥 먹고 집에 들어가면 솔직히 자기 바쁘다. 마무리 투수라는 특성 때문에 한 경기 끝나면 또 다음날 경기를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무리를 ‘숙명’으로 여기는 듯 했다.
올해 SK와의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아보라는 질문에는 “1차전”이라고 했다. 첫 경기여서 부담이 컸고, 자신 뿐 아니라 선수단 모두가 1차전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한다. 또다른 순간이 있었느냐고 묻자 “2차전 8회였다”고 기억했다. 당시 오승환은 삼성이 2-1로 한 점 앞서는 상황에서 마무리로 나왔지만 SK 최동수에게 적시타를 맞았다. 아찔했으나 삼성 우익수 이영욱의 기막힌 홈 송구로 오승환은 실점 위기를 넘겼다.
오승환은 “지금 생각하면 웃지만 그 때 홈에서 아웃이 안됐다면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갈 수도 있었다”며 “만약 동점으로 가고 연장까지 가서 우리가 졌다면 전체적인 한국시리즈 분위기가 SK쪽으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승환은 경기 뒤 이영욱에게 “고맙다”고 했고, 팀 동료들로부터 “영욱이한테는 꼭 밥 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돌직구’에 대해선 중학교 때부터 손가락으로 공을 집는 방식으로 던졌다고 했다. 오승환은 “계속 빠른 볼을 던지긴 했지만 선동열 감독께서 항상 투구 밸런스와 하체를 이용하는 투구를 강조했다. 결국 선 감독님의 가르침대로 했고, 공이 더욱 빠르고 묵직해졌다”고 설명했다. 오승환을 선발에서 마무리로 바꾼 사람도 바로 선 감독이었다.
돌직구라는 승부구를 갖고 있는 오승환도 그러나 “마운드에 서면 긴장되고 모든 타자들이 까다롭다”고 고백했다. 등판하는 상황이 많아야 3점차이고, 아니면 1점차 상황에서 그것도 주자가 있을 때 마운드에 오르기 때문에 긴장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직구에 대한 오승환의 믿음은 상당했다. 그는 “내 공을 아무도 못친다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타자를 생각하기보다는 내 볼을 내가 먼저 믿는다”고 말했다.
오승환은 가장 본받고 싶은 투수로 선 감독과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는 임창용을 꼽았다. 오승환은 “두 선배 모두 마무리 투수인데 나도 마무리로서 롱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내년 한국 무대에서 뛸 가능성이 높아진 ‘코리안 특급’ 박찬호에 대해선 “한국에서도 100승 이상 달성한 투수가 몇 명 안되는데 꿈의 무대 메이저리그에서 100승을 넘어선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라고 밝혔다.
오승환의 미래 계획도 온통 야구 뿐이었다. 그는 “성적을 놓고 이야기하기보다 내 가장 큰 바람은 부상을 안 당하는 것”이라며 “마무리 투수로서 꾸준히 마운드에 오르고 싶다”고 밝혔다. 오승환은 여자친구 질문에는 난처한 듯 얼버무렸지만 결혼은 당분간 하지 않을 계획이다. 그는 “혼자 산다고 아직 크게 불편한 것을 못 느낀다. 결혼은 아직 모르겠다. 야구를 좀 더 한 다음에 생각해보겠다”고 답했다.
오승환은 이날 프로야구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를 고사한 것에 대해 “선의로 봐 달라”고 짤막하게 말했다. 또 후배인 최형우(28)가 MVP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오승환은 “형우가 삼성에 입단해서 방출됐고, 입대한 뒤 이 악물고 열심히 해 방출됐던 삼성에 다시 왔다”면서 “올해도 형우는 너무 잘했다. 내게 주실 표가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그 표를 형우에게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대구=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