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거래 악용 ‘富의 대물림’ 쇠방망이

입력 2011-11-03 21:12


자원개발업체 B사의 사주 정모씨는 2008년 조세피난처인 버진아일랜드에 본인 명의의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세워 B사로부터 자원개발 투자비 명목으로 투자자금을 끌어들였다. 개발투자는 막대한 투자이익을 냈으나 정씨는 원금만 국내 회사에 보내고 수백억원의 투자소득은 해외 예금계좌에 은닉하거나 아내 명의로 미국의 고급아파트를 구입하는 데 썼다. 국세청은 세무조사 끝에 정씨에게 소득세 및 증여세 등 250억원을 추징했다.

국세청이 국제거래를 통한 편법대물림 수법에 메스를 댔다. 국세청은 3일 제조·무역·해외자본개발업 등 국제거래를 이용한 편법대물림 기업과 해외재산 은닉을 통해 상속·증여한 전문직 종사자 등 11건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총 2783억원을 추징했다고 밝혔다. 세금 추징된 업체들 중 대기업은 없지만 2곳은 상장사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조세피난처에 자녀 명의 해외펀드를 만들어 경영권을 승계하거나, 해외에 자금을 은닉한 뒤 자녀에게 증여하는 등 다양한 편법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부품 중견업체인 A사 김모 대표는 국내외에 여러 공장을 운영하면서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주기 위해 버진아일랜드에 X펀드를 만들었다. 이어 A사 등이 보유한 해외지주회사 지분을 X펀드에 싼값에 양도하고 펀드의 출자자 명의를 아들로 바꿔 경영권을 넘겨줬다. 국세청은 김씨와 A사에 대해 법인세 및 증여세 800억원을 추징하고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고발조치했다.

전자공구업체인 C사 사주 박씨는 버진아일랜드에 가족 이름으로 페이퍼컴퍼니를 세우고 C사의 해외 현지법인 지분을 넘겼다. 이를 통해 현지법인에서 발생한 소득은 홍콩 예금계좌에 예치해 관리하면서 국내 신고를 누락했다. 아들 이름으로 된 위장계열사에는 일감을 몰아주고 회사지분 80%를 페이퍼컴퍼니로 이전해 배당소득까지 해외에서 챙겼다.

국세청은 또 고액부동산 등을 소유한 대재산가와 일부 중견업체들의 자금흐름을 분석한 뒤 편법적 부의 대물림 혐의가 높은 10개 업체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연간 수입금액 1000억∼5000억원대의 전자, 기계, 의류제조, 해운업 등 창업 1세대에서 2세대로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인 중견기업들이 일부 포함됐다.

이들 기업인에 대한 세무조사 및 세금추징 배경에 대해 국세청은 “최근 계열기업 간 일감 몰아주기 과세가 추진되자 재산을 해외에 숨기거나 해외 유령업체 등을 활용해 변칙 상속·증여를 시도하는 등 부의 대물림 행태가 지능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