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미FTA 대치] “과실은 민노당, 욕은 우리가 먹나”… 민주당 딜레마
입력 2011-11-03 18:08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 문제가 장기화되면서 민주당이 딜레마에 빠졌다. 여론이 계속 악화되면서 당 이미지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지만 달리 빠져나갈 구멍이나 대안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초 FTA로 인한 농업과 중소기업 분야 피해와 관련해 정부대책을 충분히 끌어낼 경우 웬만하면 FTA를 통과시켜 준다는 입장이었다. 그게 자유시장주의를 중시하는 ‘새로운 진보’를 표방해 온 손학규 대표의 정체성과도 부합했고, 한·미 FTA를 끌고 들어온 당사자인 구여권 출신 인사들의 정치적 당위에도 맞는 것이었다. 하지만 뒤늦게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돌연 강경모드로 전환됐다. 특히 김진표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여당과의 협상에서 어렵게 이끌어낸 ‘ISD 중재안’도 무용지물로 평가되면서 더 이상 후퇴하기 어려운 외통수에 갇히게 됐다.
문제는 당의 투쟁성이 부각되면서 고정 지지층에서는 응원을 얻어내고 있지만 전체 국민들에게는 ‘발목 잡는 이미지’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3일 “부당한 조건의 FTA를 막아낸 게 민주당이지만 밖에서는 민주노동당이 막아낸 것으로 알고 있고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민노당이지만 민주당이 더 비판받고 있다”며 “과실(果實)은 민노당이, 욕은 민주당이 먹고 있는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당 내부도 협상파와 강경파로 나뉘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한 당직자는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과거 열린우리당 시절의 노선 투쟁인 ‘빽바지(개혁파) 대 난닝구(실용파)’ 논쟁이 요즘 다시 생각난다”며 “김 원내대표, 김동철 외통위 간사 등 협상파들은 요즘 일할 맛이 안 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더라도 ISD 폐기에 성공할 경우 제1야당으로서의 존재감이 부각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도 없지 않다. 손 대표 측 인사는 “야당이 너무 힘없이 무너져도 지지층이 떠나고 만다”며 “결국 나쁜 FTA를 폐기해 좋은 FTA로 바꿔 놓으면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