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종이 여자’
입력 2011-11-03 17:49
현실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소설 ‘종이 여자’를 읽는 동안에는 가능하다.
주인공은 실연의 아픔에 빠져 수면제 등 약물에 의존해 폐인처럼 살아가는 베스트셀러 작가 톰과 그가 쓴 소설(픽션) 책에서 ‘떨어져’ 현실세계로 온 ‘종이 여자’ 빌리다. 느닷없이 나타난 귀엽고 발랄한 빌리와 생활하면서 톰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빌리를 위해 신작 소설을 완성한다. ‘시간이 멎고 산소가 넘쳐나는’ 사랑을 서로 확인한 것이 힘이 됐다. 하지만 신작 소설이 나오는 순간 빌리는 톰의 인생에서 홀연히 사라져 책 속으로 돌아간다. 뮈소의 표현을 빌리자면 ‘가슴을 꿰뚫고 지나간 총알처럼.’
여기가 끝이 아니다. 뮈소다운 놀라운 반전이 있다. ‘종이 여자’는 톰의 절친한 친구가 톰의 재기를 위해 1만5000달러 주고 고용한 B급 배우였던 것이다. 톰은 충격 받았지만, 사라져버린 줄만 알았던 빌리가 생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새 삶을 찾게 해준 빌리와의 재회를 간절히 원했고 빌리 역시 톰을 잊지 못했다. 빌리가 톰의 신작 사인회에 찾아오면서 둘의 운명적인 사랑은 결실을 맺는다.
‘종이 여자’는 지난해 12월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출간됐다. 픽션과 현실 사이를 넘나들며, 로스앤젤레스 로마 파리 등을 무대로 매우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뮈소가 자신의 작품에 열광하는 한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일까. ‘이화여대생 박이슬’이 소설 안에서 엑스트라로 등장한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지난 2일 올해 전자책 판매 현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개별 도서 가운데 가장 많은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책이 바로 ‘종이 여자’였다.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등의 소설로 최단기간 1000만부 이상을 판매한 뮈소의 명성이 재확인된 셈이다.
전자책 분야는 매년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대로 소형 서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는 추세다. 전국 서점 수는 2001년 2646개였으나 지금은 1500여개 정도다. 특히 인문사회과학 전문 서점의 경기가 좋지 않다는 소식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민주화시기에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경영난에 허덕이다 못해 폐업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경우 20개 이상이던 인문사회과학 서점이 6개로 줄었다는 보도가 최근 있었다. 70, 80년대 대학을 다녀서 그런지 씁쓸하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