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 마련 위해 대리모로…” 고단한 청춘들 그린 ‘려수’의 주연 고준희

입력 2011-11-03 17:37


진광교 감독의 두 번째 장편 ‘려수’(15세 이상 관람가)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꿈을 잃어버린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과 방황을 담아낸 영화다. 군 제대 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퀵서비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철수(정의철)와 역시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대리모가 된 미진(고준희)이 전남 여수에서 우연히 만나 동행하는 이야기 속에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그대로 드리워져 있다.

지난 1일 서울 태평로1가 예술영화 전용관 ‘스폰지하우스 광화문’에서 만난 고준희(26)는 “지난해 6월 여수에서 한 달가량 거의 올 로케이션으로 촬영한 작품”이라며 “동갑인 의철씨와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고 여수도 공기와 경치가 무척 좋아 멋진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오는 10일 개봉되는 이 영화에서 미진은 톡톡 튀는 성격이다. 대리모 의뢰인에게 돈을 더 받아내기 위해 신경전을 펼치는가 하면 여수에 사는 언니에게 돈을 빌리러 온 처지이면서도 어깨에는 명품 핸드백을 걸치고 있다. 얼떨결에 잠시 아기를 맡아준 철수에게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며 오히려 벌컥 화를 낸다.

그는 대리모 여대생인 미진은 자신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였다고 털어놨다. “주변에서 본 적은 없지만 대학가에서는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이래요. 그 감정을 어떻게 담아낼지 처음에는 난감했지만 아기랑 함께 지내며 미진의 감정에 빠져들려고 애썼지요.”

영화 속 철수와 미진처럼 학생들이 아르바이트 전선으로 내몰리는 현실에 대해 물었더니 공감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학기 등록금이 500만원이 넘는 곳도 많으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주변 친구나 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공사장 등에서 막노동을 해 등록금을 마련하는 애들도 많다고 해요. 휴학했다가 등록금 벌어서 다시 학교 다니는 애들도 많죠.”

영화 후반 철수와 미진이 음식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에는 젊은이들이 그런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이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넌 사는 게 뭐라고 생각해?”(미진) “글쎄. 뭐 별거 있나.”(의철) “별거 없지. 정말 별거 없다. 세상 돌아가는 거 진짜 웃긴다. 우리 같은 애들한텐 별 뜰 기회 같은 건 애초부터 없었어.”(미진)

‘려수’는 무거운 주제를 다뤘지만 철수가 미진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과정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영화에서는) 누가 화를 크게 내지도, 너무 슬퍼하지도 않아요. 감정의 변화가 크지 않고 잔잔하게 흐르죠. 등장인물도 많지 않아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세상과 쉽게 타협하고 주관 없이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뭔가 느끼는 게 있겠지요.”

‘려수’는 아리랑국제방송이 도시에 스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 인물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내고자 기획한 프로젝트 ‘영화, 한국을 만나나’ 시즌2의 두 번째 작품답게 영화 내내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수의 명물인 돌산대교의 낮과 밤 풍경, 여수의 작은 섬 사도의 돌담길과 해변 등 아름다운 경치가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지난 7월 종영된 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톡톡 튀는 매력에 뛰어난 패션감각을 지닌 화장품 연구원 강민수 역으로 깊은 인상을 준 고준희는 요즘 케이블 온스타일 ‘스타일매거진’에서 MC로 활약하고 있다. 내년 개봉될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이란 영화에도 캐스팅돼 촬영 중이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복을 맞추러 간 가게 주인의 권유로 부모 몰래 학생복 모델 선발대회에 나갔다가 금상을 받은 게 계기가 돼 연예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했다. 이후 경희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고 2003년 ‘나는 달린다’로 데뷔해 ‘여우야 뭐하니’ ‘사랑에 미치다’ ‘종합병원2’ 등의 드라마와 ‘걸스카우트’ ‘꼭 껴안고 눈물 핑’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도시적 이미지에 당차고 솔직한 역을 주로 맡아 온 고준희는 “MC에 화보 촬영도 하고 있지만 제 기본은 연기”라며 “더 유명해지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냥 제 일을 즐기면서 하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라동철 선임기자 rd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