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를 읽어라… 선거 세대간 대결서 ‘스윙보터’ 부상

입력 2011-11-03 18:10


2008년 개봉된 미국의 코미디 영화 ‘스윙 보트(Swing Vote)’에서 영화배우 케빈 코스트너는 별다른 직업 없이 혼자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중년의 버드 존슨 역을 맡았다. 대통령 선거일, 선거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혼자 투표를 못 한 버드에게 10일 내에 재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마침 한 표 차의 박빙 승부를 펼치던 현 대통령과 야당 후보는 버드의 표를 얻기 위해 총력전을 펼친다. 버드의 한 표에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느냐가 달리는 상황이었다.

미국에서 스윙 보트는 뚜렷한 정치적 주관이 없어서 그때그때 달라지는 투표성향을 말한다. 재판에서는 연방대법관들 사이에서 의견이 팽팽하게 맞설 때 무게추가 한쪽으로 기울도록 하는 역할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행위자를 스윙 보터라고 부른다.

뜨거운 관심 속에 치러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스윙 보터는 누구였을까. 바로 40대 유권자들이었다. 세대별로 살펴보자. 방송 3사 출구조사(중앙선관위는 세대별 득표율 집계를 공개하지 않는다)에서 20대, 30대는 각각 69.3%, 75.8%라는 압도적인 지지율로 무소속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50대, 60대는 56.5%, 69.2%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지지했다. 이들 세대는 투표 성향이 충분히 예견됐기에 스윙 보터가 될 수 없었다. 승부는 40대로 인해 판가름 났다. 왜 66.8%나 되는 40대가 박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까.

40대는 보수화 시작되는 시기

1962년생부터 71년생까지가 40대에 해당된다. 유권자들을 세대별로 구분하면 40대가 가장 많다. 이들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전체 유권자중 22.4%)나 올해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25.1%)에서도 유권자 층이 가장 두터운 세대였다.

현재의 40대는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40대 중·후반의 경우 20대에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이른바 486세대(80년대 학번·60년대 생)다. 이들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이뤘다는 자부심이 넘치는 특징을 보인다. 또 다른 부류는 40대 초반인 70년대 생으로 민주화 운동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을 때 청년기를 보냈다. 그러나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취업에 큰 어려움을 겪고 부모가 실직하는 모습을 목격하기도 해 IMF 트라우마(정신적 외상)가 많은 세대다. 이런 40대들은 청년기의 특성상 한나라당 지지 성향을 갖기는 어렵다고 추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40대는 가정을 꾸리고 아이가 커가면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강하게 갖는 시기다. 자기 주변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로 연령효과(Age Effect)도 많이 나타난다. 연령효과란 자연연령에 따라 사회의식이 변화되는 걸 말하는데, 나이가 들수록 보수화하는 경향이 있다. 즉 노년에 접어든 부모에 대한 공양, 아직 성장기인 자녀의 교육, 사회적 위치를 좌우하는 부동산 문제 등이 주된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기존 가치관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기울게 된다.

보수화 경향이 짙어지는 40대에게 변화가 시작된 기점은 대략 2002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학과 교수는 2009년 한국정당학회보에 기고한 글에서 “2002년 대선에서 세대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종전 한국정치에서 보였던 지역주의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세대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고 밝혔다.

김영삼, 김대중으로 대표되는 지역주의 맹주들이 물러나자 유권자들의 세대별 분화 양상이 시작됐다. 2002년 대선이 대표적인 경우였다. 선거 과정에서 발생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에 따른 촛불집회, 반미 감정 고조 등의 상황에서 20∼30대는 분노하며 진보 성향 후보를 지지했다. 반면 50∼60대는 20∼30대와 달리 보수후보에 쏠렸다. 40대는 진보와 보수 성향이 뒤섞인 채 반반이었다. KBS와 미디어리서치가 실시한 2002년 대선당시 출구조사에서 이회창-노무현 후보는 각각 47.9%, 48.1%로 엇비슷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세대별 분화 양상은 수그러들었다. 2007년 대선 당시 40대의 선택은 이명박 후보였지만 다른 세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

40대의 분노 왜?

40대가 진보적 성향으로 돌아선 것은 10·26 서울시장 선거가 절정이었다. 한나라당 원희룡 최고위원은 선거가 끝난 뒤 “우리가 뼈아프게 받아들이는 것은 40대가 한나라당에 강한 반감을 표출한 점”이라고 말했다. 40대 표심이 선거를 좌우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40대가 우측 깜빡이를 끄고 좌회전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주거 불안정과 자녀 교육비 증가, 일자리 불안 등 MB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가장 많았다.

소통부재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증권사에서 일하는 박모(45)씨는 일방주의적 국정운영 방식을 보이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반감 때문에 박원순 후보를 지지했다고 말했다. 86학번인 그는 대학 2학년 때인 87년에 6·10 항쟁에 직접 참여했다. 박씨는 “독재 타도를 외쳤던 87년에도 이런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은 없었다. 같은 대학 선배이기도 해서 이 대통령에 기대를 많이 걸었는데 정말 너무 기대에 못 미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대북 정책의 경직성이나, 퇴임에 대비해 아들 명의로 산 내곡동 사저 사건 등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고등학교 교사인 이모(48·여)씨의 경우 사회양극화에 따른 소득 불균형의 부작용을 교육 현장에서 목격하고 있다. 이씨는 “대학교도 아닌 중·고등학교에서 등록금이나 급식비, 사교육비 문제를 걱정해야할 아이들이 늘고 있는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며 “이명박 정부는 사회 양극화 해소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여 이번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를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회사원 신모(44)씨는 투표권을 가진 이래 줄곧 한나라당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그도 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신씨는 “내 생활이 다른 사람에 비해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이 대통령이 너무 가진 사람들에게만 신경 쓰는 것 같다”며 “특정지역 편중 인사, 이른바 ‘고소영’ 내각 등을 보면 이 정부는 경제 살리기도 못하면서 내치(內治)도 못 한다는 불만세력의 입장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

여권이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도 외면 받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다. 경제를 살려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이 대통령을 지지했으나 오히려 중산층이 벼랑에 내몰리면서 불만이 팽배해 있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장은 “민주화운동기를 보낸 40대에게는 기본적으로 진보적인 DNA가 내재돼있었지만 나이가 들어 사회의 주축이 되면서 중도적인 입장을 취했다”며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젊은 시절 권위주의적 정권에 도전적인 자세를 보였던 DNA가 정권심판론과 맞물려 다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기려면 스윙 보터를 잡아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 선거 당시 전통적으로 스윙 보터 역할을 하던 접전 지역, 즉 콜로라도, 미시간, 미네소타, 위스콘신 등 4개 주에서 모두 공화당 후보 존 매케인 상원의원을 눌렀다. 스윙 보터를 잡아야만 이길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의 경우, 내년 총선이나 대선 때도 세대 간 투표현상이 계속된다면 결국 40대의 마음을 얻는 쪽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근래 주요 선거 때 40대의 지지율 변화(방송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출구조사 기준) 추이를 보자. 지난해 6·2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오세훈 후보가 35.9%의 지지를 받은 데 반해 민주당 한명숙 후보는 54.2%의 지지를 기록했다. 올해 4·27 경기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는 한나라당 강재섭 후보가 30.4%, 민주당 손학규 후보가 68.6%를 차지했다. 이번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66.8%를 얻어 32.9%에 그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압도적으로 앞섰다.

40대의 불안 요인인 양극화, 일자리, 교육비 문제 등이 단 시일 내 해결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내년 선거 때까지는 이들의 반(反) 여당 기류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안일원 리서치뷰 대표는 “2008년 이후 수도권에서 치러진 각종 선거 양상을 볼 때 40대의 비(非) 한나라당, 반 여당 성향은 일관성이 있다. 전국 단위로 따져도 대구·경북을 제외하고는 비슷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내년 선거에서도 변수가 없는 한 40대의 반 여권 성향은 그대로 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신중론도 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40대가 현재 반 여당 성향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용적인 면모도 있는 만큼 내년에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유동적이라고 봤다. 그는 “연령효과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40대가 내년 총선이나 대선에서도 계속 반 여당 성향을 나타낼지는 불분명하다”면서 “실질적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할 경우 그 세력에 호감을 보이며 실용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기류가 그대로 유지될지, 변화할지는 결국 정치세력이나 여야 후보들이 40대들에게 어떤 이슈를 던지고 진정성 있는 해답을 제시할지에 달려있을 것이다. 40대들은 기다리고 있다. 스윙 보터의 힘을 과시할 내년 총선과 대선을.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