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학생 가르치다 두들겨 맞는데… 눈 감은 ‘교권보호기구’
입력 2011-11-02 21:11
지난 7월 강원도 원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 허모(26·여)씨는 학교를 찾아온 학부모에게 다짜고짜 머리채를 휘어 잡혔다. 허씨는 아들이 반장이 되지 못했고, 교내 경시대회에서 장려상밖에 타지 못했다며 항의하는 학부모에게 폭행 1년전부터 “밤길 조심하라” 등의 협박을 들었지만 학교에 설치된 교권보호기구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아 별다른 대응을 못했다. 허씨는 폭행을 당하고 나서야 경찰에 신고했다. 지난달 19일 광주의 한 중학교에선 학생이 훈계하는 교사의 머리채를 잡고 치고받은 사건도 발생했다.
교권침해사례가 날로 늘고 있지만 학교에서 운영하는 교권보호기구인 ‘분쟁조정위원회’는 무용지물이다. 교권을 침해당해도 교사들이 호소할 곳이 없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2일 공개한 ‘교권침해 관련 전담기구 설치 및 운영실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조정위가 개최된 건수는 서울 17건, 부산 9건, 인천 14건 등으로 교권침해 사례 발생건수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지난해 교권침해 사례가 서울 205건, 경기도 135건, 부산 39건 등 523건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조정위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것이다. 게다가 조정위 활동의 대부분은 교내 폭행 등에 휘말린 학생의 갈등 조정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조정위가 교권침해 사건을 해결하는 데는 전혀 활용이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각 시·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교원예우에 관한 규정’ 등을 신설·개정해 학교에 분쟁조정위원회 설치를 권고했다. 조정위는 학생 간 분쟁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 분쟁 등 학교 내 전반적인 분쟁 해결을 맡는 자치기구다.
현재까지 서울 초·중·고교 각 94%, 94%, 84%, 부산 100%, 경기 100% 등 전국 대부분의 학교에 조정위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교는 거의 없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교권보호 전담기구 설치와 운영은 법으로 강제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학교 측에 자체적인 운영을 권고하고 있지만 제대로 지키는 학교가 거의 없다”고 했다.
시·도교육청은 조정위에서 해결이 안 됐거나 사법처리를 원하는 교사에게 법률 상담 및 변호사 비용 등을 지원하는 ‘교권법률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지원단의 교권침해 지원 사례는 서울 3건, 부산·인천·대전·경남 0건 등이다.
정부경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