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무역액 1조 달러
입력 2011-11-02 17:52
11월 30일 ‘무역의 날’은 원래 ‘수출의 날’이었다. 1964년 연간 수출액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해 지정됐다. 제1회 행사는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관에서 12월 5일 거행됐다. 이듬해부터 11월 말로 날짜가 바뀌었고, 수출 증진 일변도 정책이 통상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1987년부터 수출과 수입을 포괄하는 무역의 날로 개칭됐다. 지난해까지 모두 47차례 행사가 치러졌지만 89년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통령이 참석했다.
수출의 날은 60·70년대 경제개발의 상징과 같다. 수출을 통해 나라를 세운다는 ‘수출입국(輸出立國)’의 깃발 아래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국가총력 수출지원 체제를 구축했다. 66년부터 청와대에서 수출확대회의가 열렸고, 70년대 들어서는 정부중앙청사인 중앙청 회의로 확대 개편됐다. 정부부처, 해외공관, 광역 시·도별 수출책임제가 시행되면서 실적이 미흡한 기관장에게 문책이 가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72년 10월 유신을 단행하며 수출 100억 달러, 국민소득 1000달러 목표를 제시했다. 당초 80년도 목표치였던 50억 달러를 2배로 높인 것이었지만 77년 달성됐다.
수출입국 드라이브는 많은 폐해도 남겼다. 수출 진작 과정에서 부실 수출 기업이 속출했고, 금융이 편중돼 내수기업은 차별을 받았다. 수출경쟁력을 위해 근로자들은 저임금을 강요받았다. 개발독재에 반발한 시위가 잇따랐고, 이를 공권력으로 찍어누르는 인권탄압이 자행되기도 했다.
우리 무역 규모가 1조 달러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10월까지 수출액과 수입액을 합한 금액이 8988억 달러나 돼 다음달 12일쯤 목표치가 달성될 전망이다. 무역협회는 올해 무역의 날 기념식을 이날로 연기해 성대하게 치를 계획이다. 교역 규모는 당시 5억2300만 달러에서 2000배가량 커졌고, 수출액은 무려 5000배가 뛰었다. 개별기업인 삼성전자가 500억 달러 수출탑을 2008년에 받았고, 현대자동차는 150억 수출을 2006년 달성했다.
이제는 ‘자원 없는 나라에서 수출 말고 뭐 먹고살게 있겠느냐’고 정부가 굳이 독려하지 않아도 기업들이 앞다퉈 세계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세계시장이 긴밀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둘러싼 논란이 치열하다. 반대 이유가 ‘경제 개방=망국’이란 선입견이 아니기를 바란다. 무역액 1조 달러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거나 우리만 생각하는 우물 안 개구리식 발상이기 때문이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