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진영] ‘나는 꼼수다’ 논란

입력 2011-11-02 17:51


인터넷 라디오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를 들어보셨는가. ‘그렇다’고 대답한다면 당신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관심 많은 젊은 세대이거나, 아니면 나이는 들었으되 청춘들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다. 반면 나꼼수를 청취해보지 않은 당신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감하다는 지적을 들어도 할 말이 없다. 나꼼수는 이제 단순히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현상’으로까지 간주될 만큼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1주일에 180만건에 가까운 조회수, 스마트폰 애플 아이튠즈 팟캐스트 시사부문 다운로드 (한때) 세계 1위, 대한민국 유권자 600만명 1회 이상 청취 등 화려한 성적표는 현실의 ‘힘’으로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를 보자. 나경원 후보의 패인에 나꼼수가 결정적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하겠는가. 여권 성향 표를 잠식한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논란이 이 방송에서 확산됐고, 나 후보 부친 사학재단 감사 제외 청탁, 특히 나 후보에게 ‘카운터 블로’가 됐을 연회비 1억원 피부과 이용 파문도 나꼼수에서 발화됐다.

나꼼수의 힘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2일 현재 팟캐스트 국내 ‘뉴스 및 정치’ 부문 1위가 나꼼수를 방송하는 ‘딴지 라디오’다. 인기의 정점은 이용자의 반응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난다. 같은 부문 다운로드 순위 3위인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대한 리뷰가 432개인데 비해 나꼼수는 42배인 1만8503개다. 오프라인에서의 관심도 절정이다. 예스 24가 집계한 주간 베스트셀러 20위권 내에 나꼼수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책이 5권이나 포함됐다.

지난달 29일 서울에서 열린 나꼼수 현장 투어 공연의 입장권 1400여장이 20여분 만에 매진될 정도로 온·오프를 가리지 않는 전방위 위력을 과시한다. 박지원 박경철 이정희 문재인 박영선 박원순 홍준표 김용옥 등 출연 게스트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내심 불러주길 학수고대하는 정치인들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집권 여당 대표는 본인이 직접 요청해 방송에 나왔다. 도올 김용옥씨는 이 방송에서 EBS가 자신의 중용(中庸) 강의를 중단토록 한 것을 강력히 비판했고, 그 영향인 듯 결국 무사히 완강할 수 있게 됐다. 나꼼수 출연 이후 그의 저서 주문이 쓰나미처럼 몰려들어 출판사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는 후문이다.

나꼼수 인기의 밑바닥에는 모바일 플랫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등장이라는 외적 환경이 깔려 있다. 그러나 본질적인 이유는 주류 언론과 MB 정부에 대한 반감, 좌절 분노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배설구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재와 형식에 제한이 없는 것을 넘어 파격적이다 보니 듣는 이의 환호작약은 더해질 수밖에 없고 대리만족은 극대화된다. ‘대통령은 ‘가카’로 호칭되고, 홍준표 대표는 ‘형님’, 도올은 ‘꼰대’다. ‘지랄’ ‘미친 놈’ ‘*발’ ‘졸라’ 등 막말 추임새와 반말에다 조롱과 비꼼 천지다. 음주 흡연 방송도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점잔 빼는 객관성의 탈피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정파성을 내세우고 시비가 일면 ‘다이다이(1대 1의 일본어 의미)로 붙자’ ‘열 받으면 너희도 하나 만들어’라는 식이다.

나꼼수는 스스로를 ‘감기처럼 왔다 스르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언론 전문가들은 이런 유의 ‘팟캐스트 정치’는 오히려 확산돼 제2, 3의 나꼼수가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과거 ‘TV 대선’, ‘인터넷 대선’에서 2012년은 ‘모바일 대선’이 될 것으로까지 예측하고 있다. 이미 ‘권력’이 된 나꼼수는 제도권 주류 언론 못지않은 가공할 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공론의 장’ 중심에 자리 잡은 셈이다. 그렇다면 진중권의 말처럼 ‘증오와 분노’로 가득 찬 말의 성찬을 펼칠 것이 아니라 ‘진실과 사실’을 판별하고 ‘숙의(熟議)된 여론’을 생산하는 언론행위에도 한두 번쯤은 눈길을 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통쾌한 ‘말잔치’ 이후에 값비싼 잔치 비용 청구서가 날아들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다.

정진영 카피리더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