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銀 수사] 사상 최대 금융비리… 거창한 수사, 초라한 결과물
입력 2011-11-02 21:22
부산저축은행 비리는 온갖 부정부패의 결정판이었다. 검찰은 저축은행 업계의 구조적 비리와 금융 감독 시스템의 미비점을 파헤친 수사라고 자평했다. 검찰로서는 중앙수사부 폐지 논란을 수면 아래로 끌어내리는 전리품도 얻었다. 그러나 정·관계 로비 수사는 핵심을 피한 채 주변만 맴돌았다.
◇로비 수사, 신통찮은 결과물=부산저축은행의 추악한 비리는 금융감독 당국, 외부 감사를 맡은 회계법인과의 유착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검찰은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고 불법 사실을 묵인 또는 비호한 금융감독원 전현직 임직원 8명과 국세청 직원 7명, 공인회계사 4명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이번 수사의 한 축인 로비 ‘몸통’을 찾아내는 데는 무기력했다. 지난 8월 말 핵심 로비스트 박태규씨가 캐나다 도피 4개월여 만에 귀국할 때만 해도 관련 수사가 급진전될 것으로 기대됐다. 검찰은 9월 27일 ‘그림자 실세’로 통하던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을 구속했지만 이것이 끝이었다. 박씨의 입을 여는 데 실패한 탓이었다.
이금로 수사기획관은 “박씨의 로비는 김 전 수석에게 집중된 단선 구조”라며 “할 만큼 다 한 결과”라고 말했다. 결국 박씨가 받은 17억원 중 저축은행 측에 돌려준 2억원, 검찰이 압수한 5억3000만원을 뺀 9억7000만원 가운데 김 전 수석에게 건네진 1억3290만원만 실제 로비 자금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돈은 ‘사람 만나는 것’이 직업인 박씨가 개인 생활비, 인맥 관리비 등에 썼고 일부는 떡값으로 나갔지만 사법처리 감은 아니라는 게 검찰 설명이다. 이른바 ‘박태규 리스트’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품을 받은 정황이 나온 박원호 금감원 부원장을 비롯해 정선태 법제처장, H 청와대 전 수석 등은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
검찰은 박씨를 포함해 브로커 역할을 한 8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44억원 정도를 ‘실탄’으로 썼다. 그런데 로비에 연루돼 실제 구속된 유력 인사는 김 전 수석과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등 3명에 불과하다.
◇시행 사업 관련 의혹도 남아=부산저축은행이 120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전국 곳곳에서 추진했던 각종 시행사업 관련 수사도 기대에 못 미친다. 전남 순천시 왕지동 아파트 사업은 로비 창구 역할을 한 방송기자, 변호사가 기소됐고, 경기도 용인시 상현동 아파트 사업에서도 식당 주인이 구속됐지만 연결된 공무원은 밝혀내지 못했다. 6516억원이 부당 대출됐고, 정치권 자금 제공설도 제기됐던 전남 신안군 개발 사업은 시행사 대표 1명을 기소한 것으로 그쳤다. 수사팀 관계자는 “의심이 가는 부분은 저축은행 비리 합동수사단이나 일선 검찰청에 넘길 방침”이라고 말했다.
◇중수부 폐지 저지 부수익=중수부는 지난 3월 15일 공개수사에 들어간 뒤 233일간 130여명의 수사 인력을 투입해 연인원 3387명을 조사했다. 정치권에서 중수부 폐지를 추진할 때라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중수부 보호막으로 쓰려 한다는 의심도 샀다. 지난 6월 국회가 중수부 폐지에 합의했을 때는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나서서 “상륙작전을 시도하는데 해병대사령부를 해체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반발했다. 그러나 같은 달 말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1차 활동이 종료되고, 김 총장이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과 관련해 낙마한 이후 수사 동력이 떨어졌다.
지호일 노석조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