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미 FTA 대치] 정동영 “통과되면 모두 이완용 돼”-남경필 “이 분이 대통령 후보였다”
입력 2011-11-02 21:48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당 의원들의 점거 농성이 3일째 이어졌다. 여야 간 의견 차가 갈수록 선명해져 직권상정 수순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통과시키면 매국노”, “합의만 하면 파기하냐”=2일 오후 2시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회의실. 남경필 외통위원장이 전체회의 도중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기습 상정하자 소란이 벌어졌다. 회의실 밖 보좌진들이 “날치기 한다, 들어가자”며 진입을 시도했다. 문이 열리자 소회의실은 순식간에 국회의원과 보좌진, 취재진 등 200여명으로 가득 찼다.
민주당 정동영 유선호 최규성 의원은 스크럼을 짜고 위원장석을 점거했다. 정 의원이 “한·미 FTA 통과시키면 여러분 모두 이완용이 된다”고 고함치자 남 위원장은 “이 분이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였다”며 맞받아쳤다.
고성이 10여분간 오고간 뒤 남 위원장이 결심한 듯 “의결정족수가 됐느냐”고 주위에 물었다. 야당 의원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남 위원장을 위원장석에서 끌어냈다.
오후 2시25분쯤 남 위원장이 “야당 의원들이 점거 중인 외통위 전체회의실 문을 열어라. 그러면 오늘 더 이상 회의를 진행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먼저 산회 선포를 하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후 6시15분쯤 남 위원장이 산회를 선포했지만 야당은 “내일 본회의에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며 점거를 풀지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가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 직후 임태희 대통령실장에게 건넨 메모가 카메라에 포착돼 소동이 일었다. ‘한·미 양국 정부는 협정발효 후 즉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 유지 여부에 관한 협의를 지체 없이 시작한다’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요구를 수용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황 원내대표가 “민주당 요구사항이 담긴 메모를 보여준 것”이라고 해명하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직권상정 10일이냐, 24일이냐=장외 논리 대결도 계속됐다. 황 원내대표는 라디오에 출연해 ISD 폐기 불가 이유를 밝히면서 “민주당이 한·미 FTA를 야권연대의 희생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ISD에 대해 아무런 보장도 받지 않은 채 한·미 FTA가 시행되면 야당이 다수당이 되고, 정권교체를 해도 대한민국 정권이 FTA를 파기하겠다는 일방선언을 하지 않는 한 ISD가 국민경제에 미치는 해독을 제거할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야 간 큰 견해차로 합의에 의한 비준동의안 처리는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박희태 국회의장이 여당의 직권상정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10일에 할 가능성이 높다. 3일은 이명박 대통령 해외순방 기간이라 여당으로선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황 원내대표가 전날 “심리적 마지노선을 11월 말까지로 보고 있다”고 말한 것에 비춰보면 24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12월에는 민주당 전당대회 등이 예정돼 있어 이달 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여야 합의가 안 되면 결국 외통위 강행처리나 본회의 직권상정밖에 없다”며 “직권상정을 하더라도 추가대화 가능성 등 상황을 좀 지켜본 뒤 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