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한·미 FTA 대치] “ICSID서 중재 절차 진행되면 국내법은 결과와 무관하게 돼”
입력 2011-11-02 13:24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앞두고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둘러싼 공방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극명한 시각차가 드러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한·미 FTA에 포함된 ISD가 국제 투자 관계에서 불평등 조약이라는 주장과 불가피한 일반적 제도라는 양론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다. 최고 전문가 2명을 통해 정치논리를 뺀 제도·법적 논리로만 한·미 FTA 속 ISD를 들여다본다.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홍기빈 소장은 ISD가 지닌 불확실성을 최대 위험 요인으로 꼽았다.
홍 소장은 “일단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중재 절차가 진행되면 한국의 국내법은 결과와 무관하게 된다”며 “한국의 국내법 의도와 상관없이 3명의 국제변호사가 분쟁 관련 조항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달라지는 만큼 이 제도가 국내법과 충돌할 위험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물론 반드시 투자기업에 유리한 결정이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정부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홍 소장은 지난 4월 호주 정부가 향후 모든 자유 무역 및 투자 협정에서 ISD를 원천적으로 배제하겠다고 공표한 사실을 언급했다. 호주 의회 산하 기구인 생산성위원회는 ISD에 대한 경제적 타당성을 연구한 끝에 지난해 11월 “ISD 도입으로 해외 투자자가 특별히 보호를 받거나 더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자국 정부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며 “ISD를 피하기 위해 노력하라(seek to avoid)”고 권고했다.
또 홍 소장은 공공정책 훼손 가능성을 지적했다. 캐나다에 진출한 미국 운송업체 UPS가 2004년 ICSID에 캐나다 정부를 제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UPS는 캐나다 국영우체국 소속 택배회사가 우체국망을 이용해 자사의 경쟁력을 훼손했다고 소송 이유를 밝혔다. 캐나다는 극지방 등 인구 과소 지역에 사는 국민에게 공공서비스 차원에서 택배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체국망을 사용한 것이라고 항변했다.
정책 방향성이 편향될 우려도 제기했다. 해외 기업들은 정부가 공공정책이나 규제 방향을 발표할 경우 향후 발생할 손실을 따져 ‘제소 의도 통지서’를 제출할 수 있다. 이 경우 정책 입안자들이 과도한 손실을 우려해 정책을 변경하거나 재검토할 가능성이 크다.
홍 소장은 “아르헨티나의 경우 2001∼2005년 40개에 달하는 분쟁이 제기됐고, 러시아는 분쟁 가액이 330억 달러에 달한 적이 있었다”며 “정책 입안자들이 제소 의도 통지서를 받으면 정책 결정에서 움츠러들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국제 중재 절차가 일관성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미국 투자자 로널드 라우더가 체코 TV 방송국 경영권 싸움에서 지고 나서 체코 정부를 상대로 진행한 2개의 중재 신청이 정반대의 결과를 도출했다”며 “ISD는 예측할 수 없는 제도인 만큼 극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웅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