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밥 한술에 감사하기
입력 2011-11-02 18:45
나는 교만한 사람일까 아닐까? 다소 생뚱맞은 질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막 기독교 전통, 아니 2000년 기독교 전통 자체가 교만을 가장 큰 악덕으로 보았으므로 이 질문은 중요하다. 사막 기독교인들에게는 스스로가 얼마나 교만한지를 재어보는 척도가 있었다. 음식에 대해서 불평하면 하는 만큼 교만한 자이며, 반대로 감사로 받는다면 그만큼 겸손한 자라는 것이다. 음식에 대한 태도와 교만이 영적으로 깊은 연관관계를 갖고 있다는 직관은 유명한 ‘사막의 철학자’ 에바그리오스의 글에 나온다. 에바그리오스는 사막에 살면서 기독교인들의 오랜 영적 심리적 경험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인물이다. 따라서 그의 명제는 귀담아 들을 가치가 있다.
에바그리오스는 탐식이 교만을 불러들인다는 것을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한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하였다. 뱀은 이런 선악과를 먹는다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고 유혹하였다. 이처럼 탐식과 교만은 최초의 유혹이었고 동시에 타락의 원인이 된다. 에바그리오스는 이렇게 쓴다. “(보다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구가 불순종을 낳았다. 달콤함을 맛보고자 한 것이 천국에서 쫓겨나도록 한 것이다.” 먹고자 하는 욕구는 몸에서 나오는 것인데, 몸의 욕구를 방치한 결과 원(原)인간 아담과 하와는 교만에 빠져 낙원에서 쫓겨났다. 교만은 근원적인 악이며 사탄의 맨 처음 싹이다.
이런 사막 전통에서 보자면, 음식을 놓고 불평하는 사람치고 교만하지 않는 자가 없다 해도 지나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얼마나 교만한지를 재어보려면 자신의 음식 먹는 태도를 관찰해 보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대하면서 맛있다고 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짜다 혹은 싱겁다 하는 정도의 사실판단이라면 별로 문제 될 것도 없다. 그런데 음식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왜 이렇게 짜니 싱겁니’ 하는 짜증 섞인 뉘앙스를 넣기 시작한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그런 사람은 머지않아 30여 가지 음식으로 차려진 돌잔치 뷔페에서 ‘뭐 먹을 게 있나?’라고 푸념할 것이다. 음식을 놓고 어떤 종류이든 불평하는 그 순간 교만의 악덕이 들어와서 영혼을 사로잡는다. 그런 영혼은 불만의 칼을 뽑아 들고 난도질할 태세로 으르렁거리지만, 실제로는 교만이라는 쇠사슬에 묶인 포로일 뿐이다. 한술 밥 때문에 영혼을 악한 자에게 넘겨서야 되겠는가?
영성의 길은 멀리 외딴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밥 한술에 감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러고 보니 또다시 성경말씀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
■ 남성현 교수는 고대 기독교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한 전문가입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그 대학에서 초대교회사 연구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한영신학대학교 교수와 몬트리올 대학교 초청연구원입니다.
남성현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