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파푸아뉴기니 문성 선교사] (5)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 하셨습니다

입력 2011-11-02 17:37


죽음 순간 “나는 하나님 아들”… 적은 화살을 내려놓았다

“오데바나!(Ode Vana)” 하얀 사람이란 뜻이다. 부족 형제들은 우리를 이렇게 부른다. “적이 나를 죽이려다 살려 보내 주었습니다.” 발루스라는 제자가 숨을 몰아쉬며 감격해했다. 부족 전쟁 중에서 적에게 잡혔다가 살아오는 일은 없던 일이었다.

파푸아뉴기니에는 대략 875개의 언어가 있다. 각 언어별로 부족을 이루며 살아간다. 부족별로 결집력이 강하며 서로 생사문제와 이해관계가 엉켜있다. 전쟁 중에 적을 죽여도 보복을 받고 적을 도와도 동족에게 보복을 당한다. 그래서 부족사람들은 보복이 두려워 절대로 상대를 돕지 않고 이 때문에 결집한다.

단순한 감성으로 살아가는 부족 형제들은 언제나 전쟁을 하며 죽음의 공포 속에 산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에서 유리한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산 정상이나 능선을 따라 집을 짓고 살며 움막에 문을 만들지 않는다.

그런데 제자 발루스가 적이 살려 보내 주었다며 감격해했다. 적이 나를 화살로 쏘아 죽이려 할 때 적에게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 손에 맡겼다. 그러니 뜻대로 하라!”고 말하자 겨누고 있던 화살을 내려놓고 “가라”고 해 도망쳐 왔다고 한다.

발루스의 간증을 들으면서 우리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죽음의 순간에서 외친 소리는 자신의 의지이기보다 믿음의 반응일 것이다. 발루스의 간증이 평생 자신의 생사가 하나님의 주권에 있음을 고백하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았다.

발루스를 놓아 준 사람을 생각했다. 전쟁에서 적을 놓아 준다는 것은 추후 동족에게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쉬운 판단은 아니다. 발루스의 절규를 듣는 순간 그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보복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또 상대가 자신을 죽일지 모르는 극한 상황에서 무엇이 그를 살인 대신 놓아 주는 결정을 하게 했을까? 주권자 하나님을 인정하는 발루스의 믿음의 고백에 살아계신 하나님은 응답하셨으리라.

부족한 우리에게도 주권자 하나님을 알게 하시는 긍휼을 베푸셨다. 어제까지도 건강하던 아들에게 갑자기 이상이 생겼다. 조금 전까지 건강하던 아이가 팔과 손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흔들리고, 걸음도 이상해지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너무나 놀랍고 당황하여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아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일곱 명의 각 분야의 전문의가 일주일 동안 검사를 했다. 뇌는 물론 온 몸과 눈 동공까지 검사했다. 그리고 검사 결과가 정상이란다. 아이는 여전히 힘들어했다. 의사는 심장마비가 올 수 있으니 페니실린을 21살 성인이 될 때까지 매일 먹이라며 큰 봉투에 약을 가득 담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와 기도밖에 할 수 없었다. 언제 심장마비가 올지 모른다는 말에 아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아버지! 왜 우리 아들입니까? 아이를 정상으로 돌려주십시오. 우리를 부르셨으면 아이들을 돌봐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고쳐주시옵소서.”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 하나님을 원망하며 울었다. 외국 동료들은 아이가 저렇게 되는 것을 보니 하나님의 뜻이 아이를 돌보라고 하시는 것 같다며 부족 선교사로 적합하지 못하니 한국으로 돌아가란다. 한국의 가족들은 너희들만 선교사가 된다고 가더니 아이들을 다 병들게 했다고 한국으로 당장 돌아오란다. 사방 어디에도 피할 길이 없었다. 금식하며 애걸하기도 하고 기도한 지도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렇게만 기도하는 것이 옳은 줄 알고 있던 어느 날 무심코 기도제목을 적어 놓은 한 장의 종이에 시선이 머물렀다. 기도제목을 다시 읽었다. 순간 내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몇 줄 안 되는 기도제목 속에 하나님을 제한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언제나 나의 의지와 생각, 지식과 경험을 따라 살았다. 나의 심령에 주님은 없었다. 아이를 고쳐달라던 나의 기도는 하나님을 관념 속에만 제한시켰던 죄악이었다.

하나님을 모르고 지은 죄가 파도처럼 몰려와 통곡하며 자복하게 하셨다. 이전에는 홍해와 같은 고난을 만나면 홍해를 피하게 하옵소서 하며 기도했다. 하지만 달라졌다.

“홍해가 필요하다면 홍해로 인도하시고 홍해와 같은 고난 중에서도 그 고난과 환란을 통해 살아계신 아버지를 만나 고난이 유익임을 알게 하시고 기쁨을 주시옵소서. 아이를 고치시든지 불구자로 그대로 두시든지 오직 아이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나타나기를 소망합니다. 죄인인 우리의 소망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아버지 기업으로 주신 아들을 아버지에게 의탁합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한국으로 가라 하시면 가고 있으라 하시면 머물겠나이다. 하나님을 나의 생각과 지식과 경험으로 제한한 죄인을 용서하옵소서.”

내 생각과 감정, 편의에 따라 하나님을 만들었고 기도했다. 얼마나 어리석고 죄악 된 일인가? 하나님은 누구신가? 전능이라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한한 능력, 어떤 세상의 언어로도 하나님의 속성과 인격을 표현할 수 없다. 그는 세상의 지식과 경험 너머에 계신다. 기적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겐 일반적인 일이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몇 개의 기도제목 속에 가둬 놓고 응답이 되면 기뻐 감사하고 응답이 없으면 불평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악인가.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했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은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감기라도 걸려야 하나님을 찾던 죄인이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며 행한 모든 신앙의 행동이 어찌 믿음의 일이겠는가.

기도를 마친 어느 날 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발견했다. 병원으로 가서 다시 검사를 했다. 의사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 데려온 아이가 맞느냐고 물었다. 모든 것이 정상이니 약도 필요가 없다고 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아이를 온전히 치유해 주셨다.

그리고 며칠 후 병원비가 모두 처리되었으니 서명만 해서 보내달라고 청구서가 도착했다. 2주간의 입원과 검사비는 우리에겐 큰 금액이었다. 놀라며 확인하니 우리의 간증을 들었던 무슬림인 수석 담당의사가 진료비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을 했고 나머지 6명의 의사도 서명했다는 것이다. 청구서를 바라보던 병원 사무원도 의외라며 놀라워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잔잔한 두려움과 기쁨이 교차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입니다(God is God).”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에게 아이를 통해 가르치셨고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기를 원하셨다. 오늘도 코라 부족을 통해 소망 없는 죄인인 우리에게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가르치기를 원하시는 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을 찬양한다.

문성 선교사

문성(60) 선교사는 아내 이민아 선교사와 함께 20년째 파푸아뉴기니 선교를 하고 있다. 지병 박리성대동맥류 때문에 인공동맥을 차고 있다. 선교지 코라 부족은 식인을 할 정도로 원시적이다.

문성(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