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테레사] 언어와 습관

입력 2011-11-01 17:43


길에서 누구를 우연히 만났다가 헤어질 때 자주 듣는 말이 “밥 한번 먹자”거나 “한번 건너갈게” 같은 소리다. 지금에야 이런 말이 “See you again” 정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오랜 미국 생활을 끝내고 막 들어온 당시에는 이걸 곧이곧대로 믿고, 시간을 허비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언어습관과 개념의 차이가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 내곤 했던 것이다.

휴대전화가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내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어떤 친구와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일을 마치고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내려가 로비에서 넉넉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록 이 친구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화를 했더니, 아니, 집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얘기인즉슨 자기 집 근처의 평소에 자주 이용하는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다가 막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역시 말을 정확하게 하지 않고, 그저 표현의 과정으로 여기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 때문에 뉴욕의 한인 사회를 소란하게 만들었던 일화는 아직도 교민들 간에 회자된다. 어린 아이가 집 안에서 사고로 숨졌는데, 조사과정에서 어머니가 ‘내 탓이오’ 하는 우리 식 표현으로 “내가 죽였어. 내가 나쁜 년이야!”라며 대성통곡을 하는 바람에 검찰에서 자백으로 믿고 기소한 사건이었다. 나중에 교포사회가 나서 “이 말은 자백이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습관적 표현에 불과하며, 이는 문화의 차이에서 온 것”이라고 설명해 사태가 겨우 해결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엄밀히 말해 문화의 차이라기보다는 언어의 개념적 차이에서 온 것으로 여겨진다. 미국에서는 화가 나서 상대방에게 “너 죽어!”라고 욕하면 말 그대로 살해 의사가 있는 협박으로 간주되어 법정에서 유력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서양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동양인을 덜 정직하다고 여기는 것도 동서양의 정직성의 차이가 아니고 말의 개념적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닌가 한다.

요사이 한국에서는 어렸을 적부터 영어로 말하는 것을 장려하고 심지어 혀 수술까지 한다고 들었는데, 이는 언어의 개념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의 소통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어서 우려스럽다. 언어의 소통은 무엇보다 정확한 내용의 전달이 중요하다. 이를 거꾸로 말하면 정확하지 않은 뜻으로는 전달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인간 두뇌의 포맷은 서너 살 때쯤 완성되고 이후에는 자라면서도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따라서 다른 나라 문화권 사람들과 제대로 소통하려면 먼저 한국어를 정확히 배우고 나중에 해당 언어를 배우는 게 순서다. 한국인이 “오렌지”라고 하거나 “아륀쥐”라고 하거나, 미국 사람들이 귤이라고 알아듣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김테레사(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