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공공정책 무력화 우려”-정부 “주요 정책 자율권 확보”… 한·미 FTA, ISD 조항 공방
입력 2011-10-31 22:27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과정에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ISD가 공공정책을 무력화할 독소조항이라는 야당의 주장과 투자 관련 협정에 들어가는 일반적인 조항일 뿐이라는 정부·여당의 반론은 끝없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2007년 체결된 한·미 FTA 원 협정에서 달라진 게 없는 ISD가 왜 4년이 지난 지금 뜨거운 공방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공공정책 무력화” VS “주요 정책 자율권 확보”=ISD는 투자자와 그가 투자한 국가 간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다. 해당 국가가 관련 협정이나 투자계약을 어겨 투자자(기업 또는 개인)에게 손해를 입힐 경우 투자자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해당 국가를 제소할 수 있도록 했다.
야당의 가장 큰 반대 이유는 세계경제 상황 변화 등으로 정부 정책 개입 요구는 높아지는데, 한·미 FTA에 따르면 정부의 공공정책이 ISD 제소 대상이 돼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제정된 유통법·상생법 등이 대표적이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31일 “최근 발의된 중소상인적합업종보호특별법의 경우엔 통상교섭본부가 제소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대해 아예 처리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는 한·미 FTA 협정문 전체로 볼 때 ISD 조항 하나만 가지고 마치 정부의 공공정책 전부가 위협받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확대 해석이라고 반박한다. 협정문에서 국민연금 등 공공퇴직·법정사회보장제도나 정부제공 공공서비스, 우리나라의 필수적 안보를 위한 조치,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건전성 조치 등은 배제하거나 예외로 규정해놨다는 것이다.
한양대 법대 이재민 교수도 “현재 FTA 협정문을 보면 국가의 주권과 관련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안전장치가 상당부분 마련돼 있다”면서 “야당에서 제기하는 우려는 이미 WTO 관련 협정에서도 노출돼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불평등 조약’인가=ISD는 한·미 FTA에만 들어 있는 배타적 조항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체결한 85개 투자협정 중 81개가 ISD를 채택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도 2500여개 투자관련 국제협정에 ISD가 규정돼 있다. 정부는 한·유럽연합(EU) FTA에서 ISD가 제외된 것도 EU 27개국 중 22개국과는 이미 양자 간 투자보장협정에 ISD가 적용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불평등 논란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미 FTA 협정에 채택된 ISD가 기존 다른 협정에서보다 소송 제기 당사자의 범위를 넓혀놨다는 것도 한 이유다.
이 민노당 대표는 “보통 투자협정에서는 이미 허가를 받아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만 보호하도록 돼 있는데 한·미 FTA에서는 투자를 하려고 시도하던 사람까지도 소송을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호주가 미국과의 FTA에서 ISD 제외를 요구해 받아들여진 점도 ISD 삭제 요구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정부도 한·미 FTA가 매우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만큼 불안감이 크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이날 론 커크 미 무역대표와 ‘중소기업 작업반’과 ‘서비스·투자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협정 발효 후 이들 회의체를 통해 ISD를 포함한 국내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해소해나가겠다는 것이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