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철환] 소통의 비밀
입력 2011-10-31 17:44
“딸에게 선물하는 꽃… 진실이 담긴 행동이 믿음을 주고, 마음의 창문을 연다”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읽은 적 있다. 요지는 자상한 아버지가 좋은가 아니면 돈 잘 버는 아버지가 좋은가였다. 놀랍게도 돈 잘 버는 아버지가 더 좋다는 의견이 훨씬 많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지나치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저녁식사를 하다가 큰딸아이에게 물었다. “아빠가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는데 솔직히 말해줘야 해.” 딸아이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의 물음을 기다렸다. “누가 너한테, 자상한 아빠가 좋니, 아니면 돈 잘 버는 아빠가 좋니, 그렇게 묻는다면 너는 뭐라고 대답할거니?” 아이는 잠시 머뭇거렸다. 딸아이는 “자상하면서도 돈도 잘 버는 아빠.”라고 대답했다.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돈 잘 버는 아빠, 라고 말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딸아이가 다시 말했다. “아빠가 돈이 없으면 예쁜 옷도 살 수 없고 신발도 살 수 없으니까, 당연히 자식들이 싫어하지. 돈 없으면 친구들 앞에서도 늘 기죽어 지내야 하니까 그것도 싫을 거고. 그러니까 둘 중에 하나만 고르라면 자상한 아빠보다 돈 잘 버는 아빠가 좋다고 말하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은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아이 말이 맞을 수 있겠다 싶었다. 부모님의 가난 때문에 기죽어 지냈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욕망을 자극하는 상품들이 넘쳐나고, 자본의 논리로 인간을 바라보는 세상이 되었으니, 아이들의 이런 생각은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닮아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더욱이 물질은 정신적, 육체적 균형을 위해 인간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 아닌가.
여러 가지로 소통이 쉽지 않은 세상이다. 세대와 지역, 빈부 사이의 소통도, 가족 간의 소통도 쉽지 않다. 소통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행동과 마음으로 하는 건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딸아이들에게 꽃을 자주 사다준다. 음료수 페트병을 자른 꽃병에 꽃을 꽂아 딸아이가 없을 때 책상 위에 몰래 놓아준다.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 번 쯤, 시장 입구에 있는 꽃집에 들러 꽃을 조금씩 사온다. 어떤 날은 노란 프리지아를 사오고, 어떤 날은 빨간 튤립을 사오고, 어떤 날은 장미나 국화를 사온다. 앞산에 피어 있는 분홍빛 엉겅퀴나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을 딸아이 책상에 놓아준 적도 있다.
딸아이가 힘들어 보일 때나 시험기간에는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몰래 놓아주기도 한다. 봄이나 가을에 말린 예쁜 양지꽃이나 패랭이꽃이나 과꽃을 편지 끝에 붙여주기도 한다. 편지 끝에 만 원짜리 한 장도 꼭 붙여준다.
딸아이는 내가 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준다. 내 말이 항상 맞는 말도, 특별히 설득력이 있는 말도 아닐 텐데, 딸아이는 언제나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잔소리까지도 들어주는 것 같았고, 심지어는 조금은 감정 섞인 말조차도 참고 들어주는 것 같아 늘 고마웠다.
딸아이가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컨대, 딸아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꽃들이, 너의 책상에 꽃을 놓아주는 아빠의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해주는 것 같다. 자신의 책상 안에 모아둔 아빠의 편지와 편지 끝에 붙여준 말린 꽃들이, 아빠의 말은 진심으로 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딸의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편지와 함께 붙여준 만 원짜리 속 세종대왕님도 딸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말씀을(?) 하셨을까. 물론 나의 추측일 뿐이다.
소통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소통은 진실이 담긴 행동과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세상의 법칙으로 냉정히 말한다면, 소통의 비밀은 내 것의 절반쯤은 상대방에게 내어줄 수 있다는 다짐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입장을 바꿔보는 역지사지가 소통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잘못을 변명하지 않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소통할 수 있다. 빨간 사과 한 알을 그의 책상 위에 놓아주며 사과하고 싶은 마음을 재밌게 전할 수도 있다. 업무로 지친 동료의 책상 위에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놓아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
이철환(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