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왜 구약에선 폭력을?… “정의가 침해당했을 때 주님은 격렬히 노하신다”
입력 2011-10-31 17:56
최근 방한 에릭 필스 교수 분석
구약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당혹스러운 문제 중 하나는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 폭력을 행사하는가’라는 점이다. 실제로 구약 성경에는 살인과 복수, 혁명과 학살 등 ‘피가 넘치는’ 이야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성경은 ‘샬롬(평화)’을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근 종교개혁주간을 맞아 방한한 에릭 필스(네덜란드 아펠도른신학대학교·사진)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필스 교수는 우선 폭력을 ‘악한 폭력’과 ‘해방하는 폭력’으로 구분하고 “구약의 본문은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그의 백성들을 데리고 정의와 평화를 위한 커다란 열정으로 자신의 길을 열어가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극단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이 폭력을 사용하신다고 했다. 샬롬의 세상을 위해 하나님은 때때로 폭력을 사용하신다는 분석이다. 그는 “구약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폭력이 안전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명시했다”고 덧붙였다.
필스 교수에 따르면 구약에 등장하는 폭력은 ‘반폭력적인(anti-violence)’ 메시지를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구약에서는 폭력이 결코 찬양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폭력은 처음부터 큰 악으로 간주됐다(창 4).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마 26:52)는 예수님 말씀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구약의 진의는 사랑이신 자비로운 하나님과의 고백”이라며 출애굽기 34장을 들어 하나님은 격렬하게 노하실 수 있다고 언급했다. 정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그것이 침해당할 때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 불의를 일으키는 자에게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이다.
필스 교수는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관을 바꾸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하나님과 폭력의 결합은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과 거부감을 느끼게 한다”면서 “하나님을 더 이상 권위주의자로 생각하지 말자는 의견이 사방에서 울려퍼진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세대를 향해 이같이 외쳤다. “우리 자신이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모든 일의 출발점이 된다. 오로지 긍정적인 생각과 경험들을 추구하고 즐거움을 극대화시키며 그 즐거움을 방해하는 것들을 없애는 것이 목표다. 믿음은 반드시 자신의 경험과 일치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포기, 변화, 순종을 원하시고 심지어는 진노의 형벌로 나라 전체를 멸망시키는 하나님을 왜 구하겠는가.”
그렇다면 가나안 족속 전멸 명령(신 7)과 미움 선포(시 139)를 어떻게 봐야 할까. 필스 교수는 신명기의 하나님 명령이 유일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그는 “문맥을 고려해볼 때 가나안의 사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혐오감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독점적 사랑”이라고 설명했다. 시편 구절 역시 사악한 자들은 저자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적이라는 걸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한편 신구약 하나님은 다른 분인가. 필스 교수는 “신구약 사이에서 하나님은 모순 대신 차이를 보여주신다”면서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이 변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샬롬의 세계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